'유머'를 순수한 우리말로 하면

'우스개'라 할 수 있겠다.

유머는 익살스럽게 남을 웃기기 위해 익살, 풍자, 해학 등이

기본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여기서 해학(諧謔)과 풍자(諷刺)는

서로 비슷한 말이면서도  그  본질은 크게 다르다.

 

풍자(諷刺)가

사회의 부정적 현상이나 인간의 결점, 모순 등을

빗대어 비웃으며 비판하는 것으로 마당놀이나 탈춤 등에서

많이 적용되고 있다.

「남의 결점을 다른 것에 빗대어 비웃으면서

폭로하고 공격함」이라는

다소 차가운 웃음이 포함되어 있는 것에 비해

해학(諧謔)은

세상사나 인간의 결함에 대한 익살스럽고 우스꽝스러운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풍자에 비해

따스한 웃음을 주는 것이기에 '우스갯 소리'도 

해학의 범주에 포함 될 수 있겠다.

 

풍자(諷刺)가 특정 인물을 공격하려는 비판적인 의도가 담겨있다면

해학(諧謔)은 억압받는 대상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그를 향한 시선을 동정적으로 만들어 웃음을 유발케 한다.

 

유머는 익살스럽게 웃음을 자아내는 표현이므로

차거운 풍자적인 것 보다는 멋과 품위가 있고 여운이 남으며

따스하고 교훈이 있는 해학적인 내용의 유머가

더 명품다운 유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안동」,「안동사람」하면

선비 고장, 양반 고을,

보수적이고, 완고하고, 근엄하고, 예(禮)를 먼저 따지는

재미 없는 사람들을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스갯 소리' 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들로 흔히들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는 하회 탈춤 같이 풍자적인 웃음과

배꼽을 잡는 '우스갯 소리'를 나누며

따스함이 담긴 해학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며

그 문화적 흔적들도 무척 많이 보유하고 있는 고장으로서

흩어져 있던 안동의 해학들을 수집하고 정리하여

한권의 책으로 묶어 소개한 안동 지방의 '우스갯 소리' 한마당이 있다.

 

조선 숙종 때 국왕의 잘못을 간하는 사간원의 으뜸인

대사간(정3품 당상관직)이라는 벼슬을 지낸

의성 김씨 지례파의 지촌(芝村) 김방걸(金邦杰1623~1695) 선생의

13世 종손이며 안동대학 교수와 경북문인협회 회장을 지낸

시인 김원길씨가 집필하여 2002년 출판사 (현암사)를 통해 발간한

「안동의 해학」이 그것이다.

필자 김원길씨는 현재 지례예술촌(임동면) 촌장으로

우리들의 고교 2년 선배이기도 하다.

 

「안동의 해학」책 소개 글에서

『선비 기질과 뚝성질에 실린 한국의 전통 골계 !

팔자걸음 찬찬한 몸놀림 속에 허리 휘는 웃음을 에두른 안동의 유머,

유림의 해학을 통해 보는 우리 전래의 여유와 품위,

따스한 지성미, 에헴 ! 하는 선비의 도포 자락 속에도

걸쭉한 입담과 슬몃한 패설이 웅크리고 있다』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되고 있는 '우스갯 소리'는

안동지방에서 실제 인물들의 이야기로 전해 내려오는 내용으로서

안동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와서

히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안동의 해학」에 소개된 안동의 '우스갯 소리' 몇 토막을 소개한다.

 

 

 

〈아베요. 토하시소.〉

『육이오 사변 후 임하면 추목에서 머슴살이를 하던

홍 아무게는 홀아비여서 아버지 기일(忌日)이 되어도 제사를 올릴 수 없었다.

제수를 장만할 돈도 없거니와 제사상을 차릴 줄도 몰랐고

축문이나 지방을 쓸 줄은 더 더구나 몰랐으니,

괜시레 제사 지내는 시늉을 하다가 남에게 들킬까 두려웠다.

그러나 홍 머슴은 출천지효자(出天之孝子)였으니

기일이 되면 주인에게 고하고 집을 나서서 아베 산소에 가서

두번 절하고는 이렇게 사뢰었다.

"아부지요 지가 못나고 박복해서 일 년에 한번 드는 제사날인데도

음식 한 접시 못 차려 드리니더, 그러니 저를 따라 장터거리로 가셔서

자시고 싶은대로 실컨 잡수시이소."

그러고는 미리 준비해 온

'현고처사부군신위(顯考處士府君神位)'라 적힌 지방을

저고리 안섶에 옷 핀으로 달고는 조심조심 산을 내려와 장터로 간다.

떡집 앞을 지날 때면 떡 방퉁이 앞에 서서 저고리 앞을 제치고

"아부지요~떡 잡수시소"하고,

밥집 앞을 지날 때면

"아부지요, 여기 밥 있니더" 했다.

과일 가게며, 술집이며, 식육점과 어물전 심지어는

묵판 앞에서도 잠시 걸음을 멈추어선 그렇게 하고

산소에 돌아와 두번 절하고 하산 하였다.

 

이 이야기는 홍 머슴이 그 주인 이종국씨에게 실토한 것으로

상당히 우수꽝스럽기도 하지만

그 효성과 용기는 심히 남을 감동시키는 바가 있다.

 

그런데 우스개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여기다

곁가지를, 아니 사족을 붙여 고약하게 왜곡 시켜 놓았으니,

이야긴 즉, 홍 머슴은 지극히 효자라 어느 날

영덕서 안동 가는 어물차를 향하게 해서 말했다.

"아부지요 저기 어물차가 오고 있니더, 실컨 잡수시이소 ~"

 

아뿔사, 그런데 차가 가까이 오는 걸 보니 어물차가 아니라 똥차였단다.

래서 홍 머슴은 저고리를 벗어 거꾸로 들고

"아부지요 얼른 토하시이소 얼른요." 하며 방방 뛰었다고 한다.

갸륵한 머슴의 효행을 칭찬은 못해 줄 망정 요로코롬 이야기를

골려 먹는 악 취미라니, 쯧쯧 …』

 

 

 

이 이야기는 청송(진보) 출신 소설가 김주영(金周榮)씨가

그의 대표작인 전10권 장편 소설인 '객주(客主)' 제2부 경상 (5권)에

'아베'가 '어머니'로 바뀌고 이야기 전개도 일부 달리해서 소개하고도 있다. 

 

 

〈선생님 먼저 벗으시서〉

이 이야기는 보태고 과장하여 많이 퍼진 유머지만

시작은 안동에서 실제 있었던 실화에서 시작이다.

『안동 산골 마을, 양반가 맏며느리가 태기가 없었다.

옛날에는 시집와서 아기를 못 낳으면 대가 끊긴다고 하여 

죄인 취급을 받던 시절,

문중 사람들 눈총과 수근거림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고민하던 새댁은 병원에서 해산한 서울댁처럼 

읍내 산부인과로 난생 처음 신의(新醫)한테 진단을 받으러 갔다.

간호부가 "얼른 벗고 누우세요" 한다.

 

아니 벗고 눕다니?

남편 외에는 누구에게도 살을 보인 적이 없는데 망측해라 !

이번엔 의사가 "아직도 안 벗었어요?" 한다.

아. 산부인과에선 이렇게 잉태를 하나 보다.

등골에 찬 땀이 흐르는 걸 느끼며 용기를 내 침대 위에 올라 갔다.

의사가 또 "빨리 벗으소 !" 한다.

종부는 모든 것을 각오하고 시집에서 쫒겨 나는 것 보다야 !!!

딱 한 번만이다 다짐하고 울움 섞인 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먼저 벗으시소."』

 

 

 

 

〈배(船)와 배(腹)〉

뱃사공이 앓아 눕자 그의 과년한 딸이 대신 노를 잡게 되었다.

어느 날 사람들을 싣고 강을 건너는데 웬 낯설고

불량기가 있어 뵈는 쌍놈 하나가 말을 걸었다.

"처녀 배 타 보기는 처음일세"

"처녀 배가 잘도 흔들어 주는구나"

싱거운 소리를 지겹게 늘어 놓았다.

성희롱임을 안 처녀는 암말않고 있다가 그 쌍놈이 내리자

노를 밀며 말했다.

"환갑 전에 양간(인간) 되긴 틀렸구나."

"네가 웬 걱정이냐?"

"내 배에서 나갔으니까."

쌍놈은 처녀의 아들이 되고 말았다.

(출저: 하회마을)

 

 

 

〈서른 열〉

『일제시대에 보국대에 끌려간 텃골 사람 용팔이

면사무소에서 마을 사람들과 줄을 서 있었다 ….

번호를 불러 하니까 앞에서 부터 하나, 둘, 셋, 넷

각자 자기 번호를 부르는데 제식훈련을 받아 본 경험이 없는 용팔은

자기 앞의 사람이 설흔 아홉 하니까 엉겹결에

서른 열 했더니 지휘관이 이리 나와 ! 했다.

몇 차례 토끼뜀과 기압을 받았으나 만서면

서른 열, 스물 열 하는 바람에 그만 보국대에서 빠지는 행운을…』

 

 

 

〈앞으로 가이소 ! 예〉

옛날에 조혼에다가 산아제한 마져 없었던 시절엔

고부가 함께 해산을 하여 조카보다 나이가 적은 삼촌이

같이 입대하는 경우도 많았다.

논산훈련소 연병장에서 교관이 똑똑한 훈련병에게

자기대신  구령을 시키고

화장실을 다녀 오니, 그런데 구령이 기상 천외다.

"앞으로 가이소 예, 뒤로 가이소 예" 놀란 교관이

"야 너 무슨 구령이 그러냐 너 집이 어디야?"

"안동인데요",  "안동서는 구령을 그렇게 하나"

"아니요. 저 안에는 우리 작은 아버지가 계시니더"

 

 

 

〈멍석장수〉

구장터에서 사장둑 넘어 새장터로 걸어가다 보니

하얀 두루마기에 갓을 쓴 노인이 길바닥에

새로 짠 노란 멍석 몇 닢을 깔고 앉아 팔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이 멍석 얼마요?"

"천사백 원 전엔 안 파니더."

"천사백 원이라구요? 천오 백이든지 이천이지 왜 꼭 천사백입니까?"

"내가 이걸 짜느라고 꼬박 열나흘 걸렸으니 천사백 받지요."

 

 

 

이 이야기는 1973년 봄날 필자 김원길씨가

미당 서정주 시인을 안내하며 안동의 장터를 구경하다가

서정주 시인이 멍석을 직접 사면서 있었던 이야기로서

그날 서정주 시인이 멍석 값으로 1,500원을 주었더니

그 노인이 따라와서 거스럼 돈 100원을 돌려 주려 하고

서 시인은 그냥 가지라 했는데도 끝까지 따라오면서

"무슨 경우가 그런 경우가 있는냐"면서

굳이 호주머니에 100원을 넣어 주고 갔으며,

그 후 서 시인이 서울로 돌아가 일기와 신문에 칼럼까지 써서

「염치를 중히 여기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안동」이라

했다는 내용을

필자가 '글쓴이 해설'로 소개한 실화이다.

 

작가 김원길씨의 「안동의 해학」은

168쪽에 90여편에 이르는 안동의 '우스갯 소리'를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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