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값 하락, 직거래가 답이다

 

김필녀

 

 

상강(霜降)이 지나자마자 올해도 어김없이 된서리가 내렸다. 하얗게 내린 서리에 싱싱하던 호박잎이 푹 삶겨 맥없이 주저앉았다. 때를 맞추어 가고 오는 자연의 준엄한 섭리를 누가 감히 거스를 수 있단 말인가. 미처 수확하지 못한 농작물을 거두어들이느라 농부들 발걸음이 더욱 분주하다.

 

가을걷이를 끝내고 나니 겨울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일에 쫓겨 단풍구경 한번 제대로 못한 아쉬움에 집 앞에 있는 학교운동장을 찾았다. 까치집만 덩그러니 남겨 놓은 채 떨어져 내린 은행잎이 노란 융단을 깔아놓은 듯하다. 나이테를 한 겹 더 두른 은행나무는 서서히 물관과 체관을 막으면서 겨울 채비를 하고 있으리라. 은행잎을 한 움큼 쥐어 흩뿌리며 나의 가을도 미련 없이 떠나보내기로 했다.

 

참으로 숨 가쁘게 달려왔던 한해였다. 긴 가뭄과 고온으로 어느 해보다 힘들었던 농부들의 곳간. 비싼 퇴비와 비료 값과 인건비를 제하고 나면 얼마나 남았을까. 흘린 땀방울에 비해 농산물 가격은 올해도 헐값이다. 농사는 농부들이 짓는데 농산물 가격은 누가 매긴단 말인가.

 

새벽부터 힘들게 캔 생강을 농협에 수매하기 위해 털털거리는 경운기에 싣고 와서 몇 시간씩 줄을 서서 대기하는 어르신들. 가격이라도 제대로 받으면 좋으련만 작년보다 반값도 안 되니 허리가 더 구부정해진 것 같다. 생강 가격이 좋았던 때만 생각해서 너도나도 심어 과잉생산을 해서 그렇다고 하니 누구를 탓하랴.

 

인터넷을 할 줄 알고, 스마트폰을 활용할 줄 아는 아정농원은 직거래를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봄에 생강 종자를 보급할 때 생강 가격이 형편없을 것이라는 농협 직원의 말을 믿고 예년보다 절반으로 줄인 것도 운이 좋았다. 욕심 부리지 말고 우리 생강을 기다리는 단골 고객들에게 직거래 할 양만큼만 제대로 짓자는 계획이 딱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해마다 아정농원의 친환경 생강을 믿고 주문하는 고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농사를 지었다. 종자를 심기 전에 밑거름을 많이 넣는 것은 모든 농사의 기본이다. 심은 후에도 화학비료 대신에 미생물(EM)과 목초액을 적절하게 뿌려주며 영양제와 살충제를 대신했다. 뽑고 돌아서면 돋아나는 풀도 제초제 대신에 일일이 손으로 뽑으며 아침저녁으로 물을 대고 정성을 다했다. 그래서인지 가뭄과 고온으로 생강농사가 흉년이라고들 했지만 우리 생강은 풍년이었다.

 

농사를 잘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판매를 잘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생강은 된서리를 맞으면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상강 전에 판매를 마치기로 계획하고 9월 말경부터 예약주문을 받았다. 예년처럼 받을 날짜를 지정해서 오전에 캐서 오후에 택배 발송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최대한 싱싱한 생강을 받아볼 수 있도록 했다.

 

생강 농사를 지어서 직거래를 오래하다 보니 맞춤 판매를 할 수 있는 노하우도 터득하게 되었다. 생강청과 생강김치, 편강을 만들기 위해서는 결과 향이 연한 생강이 필요하고, 생강을 썰어 말리거나 양념이나 약제에는 굵고 향이 진한 생강을 선호했다. 또한 가격보다는 품질을 우선시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대부분 대도시에 사는 분들이 주 고객이다 보니 선별에도 더욱 신경을 썼다. 밭에서 1차로 캔 생강을 택배 상자에 담기 전에 다시 한 번 깨끗하게 손질을 해서 굵고 좋은 생강은 높은 값을 받고, 남은 생강은 알뜰형으로 저렴하게 판매를 했다. 핵가족 시대인 만큼 5키로, 10키로 단위로 소분해서 판매한 것도 적중했다.

 

예약주문 받은 생강 택배 발송을 10월초부터 시작해서 25일경에 판매를 다하게 되어 마감을 했다. 20여 일 동안 하루에 대략 40박스씩 발송을 했으니 10월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보냈다. 판매를 마감한 뒤에도 계속 주문이 들어왔지만 생강이 없어 판매를 하지 못했다. 10월 말경부터 생강값 하락으로 밭을 갈아엎는 농가들이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이웃에는 내색도 하지 않았다.

 

쌀과 생강을 비롯해서 농산물값 하락으로 농부들의 삶이 더욱 힘들어졌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도 없고, 농사를 짓지 않을 수도 없지 않은가. 욕심 부리지 말고 적당하게 지어 직거래를 할 수 있다면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직거래 판매가 쉽지만은 않겠지만 노력하면 안 되는 일도 없을 것이란 생각에 생강 판매에 대한 사례를 나열해봤다.

 

올해 가을걷이를 마치면서 아정농원도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대농을 꿈꾸며 임대해서 짓던 땅은 대부분 돌려주고 우리 땅에만 농사를 짓기로 했다. 농사 규모가 크다고 해서 수입이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마음먹은 김에 봄에 지어 가을에 거두는 농사도 과감하게 줄이기로 했다. 일 년짜리 농사 대신에 심어 놓고 몇 년 뒤에 수확하는 약초 농사를 조금씩 짓기로 하고, 시험 삼아 올 가을에 작약을 조금 심었다. 쉬운 농사가 어디 있겠는가. 한 해 동안 짓는 농사도 버거운데 4년 동안 공을 들여야 하는 만큼 더 힘든 농사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느긋한 마음으로 해를 거듭해서 정성을 다한다면 안 될 이유도 없지 않겠는가.

 

내년 6월에는 탐스러운 작약꽃에 흠뻑 취해볼 수 있을 것 같아 벌써 가슴이 설렌다.()

 

-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지 10,11월호(통권 165호)

- 김필녀시인의 농장일기

 

 

 

 

 

 

 

 

출처 : 마 캐는 시인, 김필녀 시인의 아정농원
글쓴이 : 김필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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