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글/김필녀_시인)
 

 

 

결혼을 한 여자에게 ‘친정엄마’는 이름만 들먹여도 명치끝이 아려오고 눈물샘이 흥건하게 고이는 존재다. 지난 3월은 내 인생에 있어서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쉰둥이 막내딸로 태어난 내가 ‘친정엄마'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스물다섯 꽃다운 나이였던 29년 전 봄, 나는 대구 명성예식장에서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신부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올 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게 키운 내 딸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눈부신 웨딩드레스를 입고 신부대기실에서 그 옛날의 나처럼 앉아 있다.

 

거실에 걸려 있는 딸의 결혼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내 딸의 가슴속에 늘 그립고 보고 싶은 친정엄마로 자리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흐트러진 옷깃을 다시 여미게 된다.

 

친정엄마가 되어 보니 이제 철이 드는지 돌아가신 친정엄마의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살아계실 때 효도하지 못했던 기억들을 더듬으며 때늦은 후회를 해보지만 가슴만 먹먹할 따름이다.

 

예쁘고 좋은 것은 찬장이나 고방에 고이 간직했다가 대구로 공부하러 간 막내딸이 방학 때 산촌 봉화로 오면 활짝 웃으시며 아낌없이 꺼내 주셨던 엄마. 일흔 다섯에 막내딸을 시집보낸 후 구부정한 허리를 연신 곧추세우시며 산바라지를 해주셨던 어머니. 꼬깃꼬깃 접어 장롱 깊숙이 모아두셨던 용돈으로 외손녀 돌 때 예쁜 원피스를 사 주셨던 어머니.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아직도 철없는 쉰둥이 막내딸을 내려다보며 늘 기도하고 계실 그립고 그리운, 내 어머니.

 

흐르는 세월 속에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되었지만 내 딸에게 나는 친정엄마가 주셨던 사랑의 절반이라도 줄 수 있는 친정엄마로 거듭날 수 있기를 날마다 기도한다. 그러면서 내 딸 또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예쁜 아이를 낳아 이 지상에서 가장 위대한 어머니의 삶을 알콩달콩 살아갈 것이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안동>

 

통권129호 - 이 한 장의 사진 

'김필녀의 삶과 문학 > 김필녀자작글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백  (0) 2010.09.13
매너리즘  (0) 2010.09.11
9월이 오면  (0) 2010.08.29
천년 궁궐  (0) 2010.07.23
원천리 가는 길  (0) 2010.07.18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