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욤나무
김필녀
감 씨를 심었는데
도토리만한 열매 안에 씨만 가득 들어있는
떫은 고욤이 주렁주렁 열리니
참이 아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속담
고욤나무에게는 거짓이다
세상에 태어났다고
된사람이 그저 되는 것은 아니다
생살 도려내는 아픔 이겨내며 배우고 익혀
거듭나지 않으면
새들도 거들떠보지 않는
서러운 목숨 부지해야만 한다
빈터만 남은 고향집 마당 어귀
묵묵하게 지키고 선
늙은 고욤나무 한 그루
음력 시월 열사흘 친정아버님 기일이면
까맣게 익은 열매 가지째 내어주며
참과 거짓의 경계 설법한다
한겨울 고방 항아리에 짓이겨 꼭꼭 담아두었던
삭아 꿀맛보다 더 달았던 고욤 맛이 그리워
한 움큼 따 입에 넣어 오물거린다
눈발 성성하게 휘날리는 초겨울
아버님의 가르침 가슴깊이 새겨 돌아서는
발걸음이 가볍다
- 151124 / 친정아버님 기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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