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김승희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도 사랑의 불을 꺼트리지 않는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그래도,
어떤 일이 있더라도
목숨을 끊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천사같은 김종삼, 박재삼,
그런 착한 마음을 버려선 못쓴다고

부도가 나서 길거리로 쫓겨나고
인기 여배우가 골방에서 목을 매고
뇌출혈로 쓰러져
말 한마디 못해도 가족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
중환자실 환자 옆에서도
힘을 내어 웃으며 살아가는 가족들의 마음속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런 마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 가장 아름다운 것 속에
더 아름다운 피 묻은 이름,
그 가장 서러운 것 속에 더 타오르는 찬란한 꿈

누구나 다 그런 섬에 살면서도
세상의 어느 지도에도 알려지지 않은 섬,
그래서 더 신비한 섬,
그래서 더 가꾸고 싶은 섬 그래도,
그대 가슴속의 따스한 미소와 장밋빛 체온
이글이글 사랑에 눈이 부신 영광의 합성

그래도라는 섬에서
그래도 부둥켜안고
그래도 손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강을 다 건너 빛의 뗏목에 올라서리라
어디엔가 걱정 근심 다 내려놓은 평화로운
그래도 거기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김승희 시인 

1952년 光州 출생.  1973년 〈경향신문〉신춘문예 시 당선. 1994년 〈동아일보〉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집 『산타페로 가는 사람』, 시집 『태양 미사』『왼손을 위한 협주곡』『미완성을 위한 연가』『달걀 속의 생』

『어떻게 밖으로 나갈까』『냄비는 둥둥』『희망이 외롭다』등. 현재 서강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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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속에는 그래도 라는 신비한 섬이 있다. 평범한 접속사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접속사로 변주됨을 이

시를 통해서 느낀다. 그래도는 마음과 마음 사이에 놓여 있다. 삶을 긍정해야 하는 희망의 섬 그래-도(島). 세상살이에 지치거나 삶이 바닥을 드러낼 때 우리는 ‘지상의 가장 낮은 곳,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기거 하는 그래도에 기댄다. 절망 끝에 선 사람들 부도, 비상시국 앞에서도 결코 마음의 징검다리 그래도를 놓는 걸 잊지 않는다. 아무리 세상이 어수선스러워도 서로 손만 놓지 않는다면 슬픔의 강 건너 평화의 섬까지 도달할 수 있다. 그렇게 만드는 것이 그래도 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엄계옥 시인



출처 : 마 캐는 시인, 김필녀 시인의 아정농원
글쓴이 : 김필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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