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농군의 좌충우돌 농사이야기
김필녀
꿉꿉한 장마철이다. 하늘과 땅이 젖어있으니 마음까지 축축하다. 울적한 주인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장맛비를 맞으며 원추리와 나리, 해바라기가 활짝 피어 인사를 건넨다.
지독한 봄 가뭄으로 인해 마실 물을 걱정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비가 너무 많이 내려 걱정이다. 절기에 맞도록 적당하게 비를 뿌려주면 좋으련만 인간들의 지나친 욕심을 일깨워주고 싶었는지 베풀기만 하던 자연도 가끔은 심술을 부린다.
올해 장마는 지역마다 편차가 크다. 장마철인데도 가뭄이 해갈되지 않는 지역이 있는가하면, 게릴라식 집중호우가 내려 수해를 입은 지역도 있다. 수마가 휩쓸고 간 삶의 터전과 논밭을 쳐다보며 탄식하는 농민들의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우리지역은 피해가 크지 않아 다행이다. 논물이 넉넉하진 않았지만 지하수를 퍼 올려가며 모심기도 제때 했고, 밭작물도 예년보다 흉작이긴 해도 다른 지역에 비하면 괜찮은 편이다. 농사는 하늘이 도와줘야 풍년이 드는데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다는 것을 초보농군도 터득했기에 묵묵하게 땀을 흘리고 있다.
불쾌지수가 높은 장마철에는 입맛도 잃기 쉽다. 보양식도 좋지만 푹 찐 호박잎에 풋양대를 넣고 지은 밥을 된장과 함께 쌈을 싸서 먹으면 잃었던 입맛도 돌아온다. 친정어머니가 좋아하셨던 장마철 별미였는데 남편도 좋아해서 자주 해먹는다.
장맛비가 잠시 그친 사이 심심하던 남편이 텃밭으로 나가더니 목청을 높인다. 큰 바구니를 가져오라기에 오이나 가지, 토마토를 따놓은 줄 알았다. 가뭄에 목이 타들어가다 장맛비에 마른 스펀지 물 흡수하듯이 흡입하며 영글어가던 풋양대가 주인의 손에 무참하게 뽑혀 예주룩 누워있었다.
혼자 큰일을 했다는 듯이 의기양양하게 쳐다보는데 할 말이 없었다. 영글지 못해 꼬투리가 납작한 양대가 반 이상이 되었다. 머쓱해할까 싶어 최대한 부드러운 말로 한마디 건넸다.
“여문 포기만 골라서 뽑아야지, 양대 여문 것도 모르는 농부가 무슨 농사를 짓는다고…….”
큰 것은 잘 처리하면서도 작은 이치를 깨닫지 못하는 남자들이 참 단순하다고나 할까. 하기야 언제 여문 완두콩이나 풋양대 꼬투리를 까본 적이 있었겠는가.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평생 공직에 있다 퇴직 후에 농사를 시작했으니 실패를 거듭하며 하나둘 배워가는 것이 당연하리라. 어쩌면 농사를 지어보지 않았기에 가지 않은 길에 과감하게 도전을 했는지도 모른다.
올해 처음으로 양대를 한줄 심었다. 가뭄에 물도 주고 정성을 다했지만 제대로 영글지 못해 수확시기를 미루어 왔다. 가끔 텃밭에 나갔다가 영근 꼬투리만 골라 따서 양대밥을 해 먹었던 것이 탈이었다. 진정한 농부가 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더 배울 것이 남아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아본다. 농사 경력 7년차가 되기까지 우리 부부가 겪었던 일화들이 참으로 많다.
시골로 이사를 온 첫해, 자급자족을 하겠다며 텃밭에 심었던 토마토와 오이, 가지의 양을 가늠할 수 없어 난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서너 포기씩만 심어도 먹고 남을 텐데 종류별로 한 이랑씩이나 심었다. 오이나 가지가 한창 달리기 시작하니 감당 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지인들한테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몇 번씩 나누어 주기도 했다. 그런데 얻어먹는 사람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 있겠다 싶어 나눔도 그만두었다. 지금 같았으면 농산물공판장에 내다 팔기라도 했을 텐데 초보시절이라 그런 소견머리도 생각나지 않아 나중에는 구덩이를 파고 묻기까지 했다.
농사짓는 방법도 몰라서 실패를 많이 하면서 터득했다. 비닐을 씌워놓고 감자를 심어야 하는데, 감자를 먼저 심고 나서 흰색 비닐도 아니고 검은 비닐을 씌워 다시 걷어내기도 했다. 무조건 많이 넣으면 좋은 줄 알고 고구마 심을 밭에 퇴비와 비료를 많이 넣어 무만큼 굵은 고구마를 캔 적도 있었다. 고구마는 굵은 것보다 마촘한 사이즈가 상품가치가 더 있다는 것을 그 때 처음으로 알았다. 고추를 심어놓고 줄을 맬 줄 몰라 쩔쩔매던 때도 있었고, 마와 생강 농사를 배우기 위해 이웃 농가에 일을 해주며 배웠던 날들도 있었다. 좌충우돌하며 배운 일들이 더해져서 지금은 오천 평이나 되는 땅을 거뜬하게 일구고 있다.
밭을 일구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기계가 경운기와 관리기다. 경운기로는 밭을 갈거나 두루 수확기를 달고 감자와 고구마를 캘 때 사용하고 관리기는 주로 이랑을 만들 때 사용한다. 처음 접하는 낯선 기계를 사용할 줄 몰라 고장도 자주내고 처박기도 많이 했다. 이랑이라고 타 놓은 것이 구불구불해서 이웃사람들에게 남사스러웠는데 지금은 자로 잰 듯이 똑바르게 잘도 탄다.
강낭콩 농사도 처음이라 실패를 했을 것이다. 공부도 농사도, 이 세상 모든 일들도 실패하지 않고 성공할 수는 없을 터. 올해보다는 내년이 낫고, 내년보다는 후년이 더 나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리라.
예주룩 따놓은 풋양대 속에서 통통하게 여문 꼬투리를 골라, 오늘 저녁에는 남편이 좋아하는 양대밥을 지어 볼이 미어지도록 먹어야겠다.(끝)
-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지 2017년 7.8월호(통권 167호)
- 김필녀시인의 농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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