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타작
김필녀
첫눈이 내렸다. 첫눈치고는 제법 많이 쌓여 새벽부터 마음을 들뜨게 한다. 절기상으로도 소설을 지났으니 하얀 눈이 제격인 겨울이다. 첫눈이 내린 날, 옛 추억도 더듬을 겸 가까운 봉정사라도 다녀와야겠다.
그토록 기다리던 농한기가 시작되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고 하던 광고 카피가 생각난다. 무량하게 안겨주기만 하던 대지도 휴식이 필요한 법. 겨울동안 푹 쉬어야 내년 봄에 다시 씨앗을 품어 풍성함을 안겨 줄 것이다. 땅을 가꾸어 양식을 얻는 농부들도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하며 지친 몸을 추슬러야 다시 힘을 얻을 수 있으리니.
시설 농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콩 수확을 마지막으로 한해 농사를 마무리 짓는다. 농협에서 정선해온 콩 포대를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올리며 아정농원도 올해 농사를 마무리 지었다.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부지런히 땅을 일구어 곳간을 그득하게 채운 뿔농군 부부도 그동안 고생했다며 서로 다독였다.
올해는 메주콩 농사를 많이 지었다. 밭이 묵는다며 꼭 좀 부쳐달라고 집까지 찾아온 이웃 어르신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파종시기가 끝나가는 어중간한 시기여서 콩을 심기로 했다. ‘가뭄에 콩 나듯 한다’는 속담이 무색할 정도로 봄 가뭄이 심해 드문드문 싹이 올라와서 빈곳마다 손으로 일일이 다시 심었다. 그 정성이 대견했는지 콩 농사가 잘 되었다.
다른 작물에 비해 콩 농사는 비교적 쉬운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풀만 몇 번 뽑아준 다음에 웃자람을 방지하기 위해 순만 쳐주면 된다. 종자 값도 저렴하고 퇴비나 비료, 농약을 안 해도 되니 농자금도 적게 든다. 그 대신에 콩 순이 올라오는 대로 뜯어먹는 고라니에 대한 대비는 필수로 해야 한다.
노랗게 단풍이 들었던 콩잎이 떨어지고 바싹 마른 줄기와 꼬투리만 남은 콩을 잘라서 탈곡을 시작했다. 기계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타작을 하면서 생기는 먼지는 피할 수가 없었다. 모자와 마스크로 완전무장을 한 채 타작을 하다 보니 고향집 마당에서 콩 타작을 하던 옛날 정경이 아련히 떠올랐다.
예전에는 도리깨로 콩 타작을 했다. 싸리 빗자루로 마당을 깨끗하게 쓴 다음에 마당가에 쟁여놓았던 콩 단을 펼쳐 놓고 아버지와 일군이 마주 서서 장단을 맞추어가며 도리깨질을 했다. 날렵한 도리깨가 휙휙 소리를 내며 콩을 내리칠 때마다 콩깍지가 벌어지며 콩알이 떨어졌다. 줄기와 콩깍지를 골라내고 소복이 떨어진 하얀 콩을 모아 풍구질을 해가며 이물질을 제거하곤 했다.
도리깨질을 반복하는 동안 어머니는 마당가에 흩어진 콩을 쓸어 담아 키질을 하셨다. 멀리 튀어 다 줍지 못한 콩은 몇날 며칠을 두고 바가지에 주워 담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콩 한 알이 모여 한 되가 되고, 한말이 모여 한가마니가 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던 것이다. 그 모습이 아른거려 콩 타작을 하는 동안 땅에 흩어진 콩을 주워 담느라 엉거주춤 애를 많이 썼다.
풍구질을 한 콩은 턱이 있는 두레상에 펼쳐 놓고서 쭉정이와 깨지고 못난 콩을 골라내는 일도 어머니 몫이었다. 두꺼운 돋보기를 쓰고 콩을 고르는 어머니를 도와준다고 마주 앉았지만 금방 졸거나 슬그머니 자리를 피한 적이 대부분이었다. 눈이 아프도록 골라낸 굵고 좋은 콩은 종자로 갈무리를 하고, 남은 콩으로 메주와 청국장을 만들거나 장에 내다 팔기도 했다.
집집마다 메주를 쑤는 일도 지금쯤일 것이다. 커다란 쇠죽솥을 깨끗하게 씻어 메주콩을 삶아내던 날은 하루 종일 배가 불렀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삶은 콩으로 메주를 만드는 동안은 실컷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안방 시렁에는 짚으로 매단 메주가 주렁주렁 달리고, 따스한 아랫목에는 청국장 시루가 이불을 덮고 있던 고향집 풍경이 그저 그리울 따름이다.
세상 모든 것이 좋아진 만큼이나 농기계도 점점 최첨단화가 되어가고 있다. 콩을 정선해주는 기계도 못난 콩과 돌을 걸러주는 것은 기본이고 색깔 선별까지 해주어 참으로 편리하다. 선별이 잘 된 노란 메주콩이 다른 집 콩보다 탱탱하고 좋아 보이는 것은 직접 땀 흘려 농사를 지었기 때문일 것이다.
올 겨울에는 내 손으로 키운 콩으로 직접 메주도 쑤고, 청국장도 만들어 볼 참이다. 잘 뜬 메주로 내년 봄에는 된장도 담그고 고추장도 담아 볼 요량이다. 친정어머니 돌아가시고 엄마 같은 큰언니한테 오랫동안 얻어먹기만 했다. 이제는 시집간 딸한테도 된장과 고추장만큼은 직접 담아 친정엄마의 손맛을 보여줘야 할 나이인 것 같다. 처음 하는 일이라 맛있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정성을 다한다면 안 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웃에서 가져다주는 김장김치가 냉장고에 그득하다. 시골에서만 느낄 수 있는 사람냄새 나는 정 나눔이다. 등 따시고 배부른 농한기까지 겹치니 어느 해보다도 따스한 겨울이 될 것만 같다.(끝)
- 격월간지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2017년 11,12월호(통권 168호) - 김필녀시인의 농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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