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타너스는 알고 있을까

 

김필녀

 

 

노구를 지팡이에 의지한 채

운동장 한 바퀴를 힘겹게 돌던 할아버지

플라타너스 깊은 그늘에 앉아 숨을 몰아쉬며

눈길마다 추억이 서린 학교 말없이 둘러본다

 

땅따먹기 말뚝 박기 하며

티 없이 뛰어 놀던 어린 시절

넓은 잎으로 그늘막이 되어 주던 플라타너스 

앞만 보며 숨 가쁘게 달려왔던 할아버지 

지난한 세월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을까

 

코흘리개 시절로 되돌아간 듯

한없이 넓게 느껴지는 운동장 숨 막히도록

다시 한 번 달려보고 싶은 것일까

걷다가 쉬고 또 다시 일어나 휘적거리며 걷는다

 

지나고 나면 모든 일들은 회한으로 남아

가슴 저리게 쓸쓸하지만

가는 세월 뒤로한 채 묵묵히 가야만 하는 인생길

겹겹이 포개어져 짙게 드리워진 그늘이

할아버지 모든 세월 포근하게 감싸 안는다.

 

090818

 

 

♬ 에버그린 / 수잔 잭슨

 

 

 

 

'김필녀의 삶과 문학 > 김필녀자작글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미집 속에 또 거미집이 있다  (0) 2009.08.23
가을바람이 분다  (0) 2009.08.20
한 여름밤의 세레나데  (0) 2009.08.18
무궁화꽃  (0) 2009.08.15
월간 스토리문학 8월호에...  (0) 2009.08.0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