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집 속에 또 거미집이 있다

 

김필녀

 

 

이삭이 패기 시작한 벼 포기 위

거미들 고만고만한 집 마을을 이루며 산다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는지

이슬 내린 집집마다 무지개 영롱하다

 

거미집 안에

거미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새벽 산책길,

자연의 오묘함에 다시금 매료된다

 

분수를 알아 욕심 없이 집을 짓는 거미

꿈에 부풀어 큰 집을 지으며

거미집 속 거미집에서 숱한 날들

얼마나 많은 고뇌를 했을까

 

몸 속 진액 자아내어 만든 커다란 집,

주렁주렁 매달린 먹잇감 가로채로 온

날쌘 도둑에게 냉큼

재물이 되는 욕심 많은 거미의 삶

 

겉으로 보이는 것이 행복이 아닌 

아이러니하고도 아름다운 우리네 인생

거미의 삶과 같을진대,

끝까지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무성하던 풀 성장을 멈춘 채

무리지어 들어 눕기 시작하는 초가을 새벽,

농부들 피땀 서린 논둑길 위에서 

못다 깨친 자연의 섭리에 고개 숙인다.

 

09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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