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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경북 봉화가 귀농 1순위였는데 지금은 안동이 1순위라고 한다. 최근엔 농촌으로 인구를 유입하기 위해서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귀농을 적극적으로 권유하여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줄로 알고 있다. ‘귀농’이란 다른 일을 하던 사람이 농사를 지으려고 농사터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이전에 우리나라의 주산업은 농업이었으며 국민의 대부분이 농사일을 해왔다. 경제성장과정에서 우리나라 농촌과 농업은 토지, 인력, 생산원료 등을 타 산업부문에 공급하는 주요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농업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더불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농업의 비중이 차차 낮아짐에 따라 지금에 와서는 사양 산업으로 소홀히 취급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산업화된 현대사회는 환경파괴, 이상기후의 빈번한 발생, 생활 여건의 악화 등 인간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러한 때에 도시생활의 번뇌를 벗고 농촌으로 돌아가 생활의 여유를 찾고 농업이 국가경제의 기틀로 새로이 태어날 때를 조용히 준비하는데 귀농의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난다김, 안동댁으로 정착하다 긴 장마 끝에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길을 따라 와룡을 지나 주진교를 건넜다. 주진교를 건너면서 다리가 생기기 전 가족들과 함께 낚시를 왔던 일이 생각나서 ‘다리가 없을 당시에는 타고 온 승용차를 큰 나룻배에 싣고 사람들과 함께 배를 타고 건넜다.’는 이야기를 하자 함께 간 편집기자가 ‘정말이세요!’ 하며 놀라워했다. 구불구불한 길이 이어지고 길 섶 산기슭에는 있는 듯 없는 듯 피어있는 자줏빛 싸리꽃이 우리들을 반기며 웃고 있었다. 김정숙 씨가 알려준 대로 귀단으로 향했다. 굽이굽이 들어가다 바람개비가 많이 달려있는 집을 찾으면 된다고 해서 차를 천천히 몰았다. 과연 길 왼쪽에 우리가 찾는 반가운 집이 있었다. 안동시내에서 30~40분 거리였다. 거리상으로는 그다지 시골은 아닌 듯도 하다. 정숙 씨 집은 도로 밑 언덕에 위치한 아담한 한옥이었다. 추위를 많이 타는 정숙 씨가 외풍이 들어오지 않게 개조를 해놓아서인지 한눈에도 꽤 탄탄해 보였다. 한옥 옆에는 조립식으로 새로 지은 집 한 채가 기역 자로 붙어있고 집 중앙에 단감나무가 정답게 서있었다. 주인보다 먼저 크고 작은 개들이 정확한 숫자도 확인할 수 없을 만큼 시끄러운 소리로 낯선 방문객들을 맞았다. 이어 오늘의 주인공인 정숙 씨와 웃는 모습이 무척 예쁜 정숙 씨의 딸 하은(월곡초등 5학년)이가 반갑게 나와서 반겨주었다. 정숙 씨가 색이 푸르고 향과 그 맛 또한 청아한 솔잎차를 대접한다. 그녀에게 “이런 집을 어떻게 구하셨어요.”하고 물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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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시골에서 불 때며 사는 게 꿈 2007년 11월에 왔으니 햇수로 3년째다. 서울 토박이면서 어렸을 때부터 아궁이에 불 때면서 사는 게 꿈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정도였다. 어머니는 ‘젊은 애가 왜 그리 시골을 좋아하냐’고 핀잔을 주기 일쑤였지만 정숙 씨는 시골생활이 무작정 좋았다고 한다. “예전부터 몸이 많이 아팠던 친정어머니는 말할 것도 없고 언니, 오빠가 처음에는 많이 만류했어요. 연고도 없는 곳에 가서 무슨 고생을 하며 살려고 그러냐, 도시 생활하던 애가 어떻게 농사를 짓느냐 걱정이 많았죠. 그런데 지금은 형제들도 다들 좋아하고 주말에도 자주 다녀가요. 무엇보다 귀농을 가장 많이 반대했던 친정어머니께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농사일을 거들고 해서 그런지 이제는 아픈 곳도 없고 저보다 귀농한 것을 더 좋아하세요. 가끔 서울에 있는 오빠네 집에 가셨다가는 답답하다고 서둘러 안동으로 내려오실 만큼 좋아하세요.” 또, 귀농을 말렸던 어머니의 마음이 돌아서게 된 사건이 생겼다. 애완견 예삐가 어느 날 피가 낭자한 채로 죽어있었다. 동네 큰 개가 물어서 죽었는데 워낙에 동물을 가족처럼 아끼는 정숙 씨 식구에게 예삐의 죽음은 큰 사건이었다. 그때 서울 시립대 옆에 살았는데 강아지 한 마리 묻어줄 곳이 없었다. 한밤중에 라면박스에 옮겨 넣어 양지 바른 나무 아래를 파서 묻어두었다. 마음이 적적해진 어머니가 귀농을 허락하셨던 때가 그때였다. 인심 넉넉한 그녀의 귀농 적응기 귀농 초기, 그렇게 힘든 점은 없었는데 돈이 의외로 많이 들어간 점이 힘든 점이라면 힘든 점이란다. 그녀의 소탈함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땀 흘려 지은 농산물은 그녀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 귀농이야기(http://cafe.daum.net/33610048)에서 판매하고 있다. |
강남의 난다김, 예안 줄넘기 대표선수 되다 그 후에 강남에서 부동산회사에 다니게 되면서 꽤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런데 욕심이 화를 불렀는지 부동산 회사를 직접 차렸다가 그동안 벌었던 돈도 날리고 빚까지 지게 되었다. 속이 쓰렸지만 오히려 약이 됐다. “귀농을 해서 안동에 살고 있으니까 전에 서울에서 함께 부동산을 하던 분들이 귀농을 하려는 분들이 있는데 좋은 땅이 없느냐며 연락을 해오고 있지요. 그럴 때 안동이나 봉화 쪽에 있는 땅 중에서 귀농하기 좋은 땅을 알음알음으로 소개를 해 주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 입소문이 나서 자꾸만 부탁을 받게 되었지요. 지금까지는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다들 좋아했는데 전문적으로 할 생각은 없어요.” 보통 귀농을 하면 동네 분들과 마찰을 빚는 이들도 간혹 있다. 동네 사람들과 교류를 잘하는지 물었는데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시골 인심이란 이런 것이다. 작은 것을 나누다보면 저절로 정이 도타워지고 콩 한 쪽도 나누어 먹게 되는 유대관계가 이루어지고, 그런 작은 정들이 쌓여 이웃끼리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 아닐까? 손재주도 좋고 취미생활도 많은 그녀는 종이인형 접기에 강아지 키우기 등 종일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부지런히 움직인다. 강남보다 더 좋은 교육환경 귀농하기 전에도 안동은 자주 다녀갔었던 그녀에게 제일 인상 깊은 곳은 도산서원이었다. 한 바퀴 돌고나면 마음이 차분해진다는데 이젠 집에서 가깝기까지 해 더욱 좋다고 한다. “제 꿈은요, 큰 산을 사서 개간을 해 파라다이스를 만드는 거예요. 거기에 움막 같은 소박한 펜션을 지어 분양해서 그분들과 함께 근심걱정 없이 여생을 보내고 싶어요.” |
나의 파라다이스 곧 우리의 파라다이스 한 때는 서울 강남에서 부동산업계를 주름잡았던,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남다른 카리스마가 느껴지기도 하는 ‘난다김’ 정숙 씨가 지금은 딸과 함께 한적한 시골로 귀농해서 노력한 만큼 정직하게 다시 되돌려주는 땅을 일구며 소박한 꿈을 꾸는 ‘안동댁’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흙과 함께 작은 행복에 만족할 줄 아는 안동사람이 되어 안동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 소박한 꿈이 알알이 영글어 귀농을 꿈꾸는 분들의 좋은 본보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안동> |
통권123호 - 新 안동인 |
향토문화의 사랑방 홈페이지 / http://www.andongj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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