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무진한 생강의 효능
김필녀
첫눈이 온다는 절기 소설(小雪)이 지나고 이제 본격적인 한파가 시작될 전망이다. 이렇게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면서 목감기가 잦고 손발이 차가워 고생하고 있다면 따끈한 생강차 한 잔을 마시는 것도 도움이 된다.
생강은 몸을 따뜻하게 하므로 손발이 차가워지는 요즘 같은 시기에 먹으면 더욱 좋다. 농사짓느라 바쁜 나를 대신해서 올해도 음식솜씨 좋은 친구가 편강과 생강차를 만들어 주어 요긴하게 먹고 있다. 뿌린 것도 없는데 인복이 더 많아서 늘 감사한 마음이다.
가을걷이도 거의 끝이 났다. 메주콩 타작이 남았지만 수확해서 쌓아놓은 콩 가리를 쳐다보는 것만으로 배가 부르다. 지난여름 유례없는 가뭄과 폭염을 견디며 농작물을 건사하느라 힘이 들었는지 추수를 대충 마치고 나니 내 자신에게 상장이라도 주고 싶은 심정이다.
숨 고를 새도 없이 김장철이 눈앞에 다가왔다. 땅이 얼기 전에 무부터 뽑아 친지와 이웃에 나눔을 하고 남은 무는 썰어 볕에 말려서 곤짠지 담글 준비를 해놓았다. 배추도 속이 차면서 맛깔 나는 김장김치로 거듭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속이 노란 배추고갱이로 배추 적을 부쳐 먹는 여유도 부려본다.
날씨 영향으로 올해는 농산물 가격이 많이 올랐다. 과일과 채소를 비롯해서 남아돌아 쌀 막걸리를 만들었던 쌀값마저 올라 서민들 살림살이가 더욱 팍팍해졌다. 김장을 담그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양념과 부재료 가격도 만만치가 않다. 그래도 추운 겨울을 날려면 김장이라도 넉넉하게 해놓아야 등 따시고 배가 부른데 오른 물가 때문에 주부들 지갑이 쉬이 열리지 않는다고들 한다.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 농부들 곳간이 그득해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하다. 풍년이 들어 가격이 적당해야 판매도 잘되고, 소비자들도 구매를 많이 하는데 흉년으로 가격만 오른 셈이다. 이상기온으로 흉년이었던 국산 생강 가격이 김장철이 다가오자 고공행진을 거듭한다.
생강은 일반농가에서는 저장을 못하는 까다로운 작물이라 수확과 동시에 판매까지 마쳐야한다. 아정농원에서는 매년 수확한 생강의 대부분을 직거래로 판매하는데 올해는 양이 적어 일찍 판매를 마감하게 되었다. 여러 사정으로 미처 생강을 구입하지 못한 단골 고객으로부터 전화가 많이 왔지만 판매할 생강이 많이 부족했다.
생강 농사를 지은 지도 꽤 오래되었다. 특히 안동은 생강주산지며 품질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어 인기가 많아 수입이 짭짤한 효자 작물이다. 보통 10월 중순경부터 수확이 시작되지만 한 달 전부터 예약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올해는 생강 작황이 좋지 않아 가격 결정을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판매기간이 짧았지만 가격이 좋아서 예년보다 수입은 더 짭짤했다.
생강의 효능은 무궁무진하다. 생강 마니아들은 햇생강이 날 때 많이 구입해서 편강이나 생강청, 생강효소를 담거나 말려서 상비약처럼 보관하면서 건강을 지키고 있다. 제초제를 치지 않고 잡초를 손으로 뽑으며 농약대신 미생물로 생강농사를 짓고 있는 것을 아는 단골 고객이 많아 해마다 선착순 예약판매를 하고 있을 만큼 자리가 잡혔다.
생강의 원산지는 인도로 그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됐다. 3000년의 역사를 가진 인도 전통 의학서 '아유르베다(Ayurveda)'에서는 생강을 ‘신이 내린 약재’로 칭하며 만병통치약으로 사용해왔다. 또 철저한 채식주의자로 알려진 피타고라스(BC580~BC500 추정)도 소화를 잘 되게 하거나 장내 가스를 제거하기 위해 생강을 섭취했다.
유럽에서 페스트가 유행하면서 영국에선 런던 시민 4분의 1에 달하는 10만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평소 생강을 자주 먹은 사람은 사망률이 현저히 낮았다는 얘기가 돌았다. 그래서 이 사실을 알게 된 헨리 8세(1491~1547)가 런던 시장에게 진저브레드(생강빵)를 보급하도록 지시했고, 이를 계기로 영국을 비롯한 서양에서 진저쿠키나 진저에일, 진저비어 등 생강이 들어간 기호식품을 즐기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생강의 매운맛을 내는 주성분은 진저롤(gingerol)과 쇼가올(shogaols)이다. 이들은 강력한 항염증, 항산화 작용을 해 감기나 기관지염 등의 원인인 병원성 세균에 대한 살균효과가 뛰어나다. 장염 비브리오균을 살균하고 고래회충으로 알려진 아니사키스를 구충하는 효과까지 있어 생선회와 함께 먹으면 식중독 및 기생충 감염을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
진저롤과 쇼가올은 통증 완화에도 도움이 된다. 6주 동안 매일 생강 3g을 섭취한 여자 운동선수들이 그렇지 않은 선수들보다 근육통이 훨씬 덜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한 전문지에서는 생리불순을 겪는 여성들에게 생강가루를 복용하게 했더니 생리통 완화에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감기 예방의 효능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용이다. 매운맛을 내는 성분이 혈관을 확장시켜 혈액 순환을 촉진하고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초기 감기 완화에 좋다. 그 밖에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나쁜 콜레스테롤인 LDL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데도 도움이 된다.
아무리 좋은 생강도 가려서 섭취해야 한다. 열이 많아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은 따뜻한 성질인 생강이 몸에 맞지 않을 수 있다. 또 지나치게 많이 섭취할 경우 위산 과다 분비로 위 점막이 손상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생강은 혈관확장 효과가 뛰어나기 때문에 출혈이 있는 경우엔 섭취를 피하는 것이 좋다.
우리 몸에 좋은 생강농사를 짓고 있는 것에 은근히 자부심도 가지고 있다. 폭염이 한창일 때 뜨거운 햇볕에 타서 죽어가는 생강을 살리려고 차광막을 치던 때를 생각하니 생강 한 톨이 귀하게만 느껴진다. 내년에는 풍년이 들어 건강한 먹거리를 찾는 많은 분들께 적절한 가격에 보급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끝)
- 격월간지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2018년 11,12월호(통권 174호)
- 김필녀시인의 농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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