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메산에서 같이 놀던 친구들아



늪실 양지마을에서 우리 집은 제일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네 살 때 태극기를 들고 새집으로 이사를 왔다고 하는데 기억이 가물가물 거린다. 집이 제일 높았기 때문에 마을에 낯선 손님이 오면 누구네 집 손님인지 마당에서 훤하게 다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우리 동네 앞에는 이름도 정다운 동메산이 있었다. 동네를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먼저 올라간 친구가 ‘미자야, 정숙아 노올자’하고 부르면 친구들이 부리나케 동메산으로 올라와 같이 놀곤 했다.

산이 나지막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동네친구들과 함께 자주 올라가서 소꿉놀이도 하고, 술래잡기도 하며 놀았던 산이다.

봄이면 혓바닥이 새파래지도록 참꽃을 따서 먹었고, 집집마다 누에를 쳤기 때문에 뽕나무에 오디가 열리면 입언저리가 까맣도록 오디를 따 먹으며 해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여름이면 매미소리를 들으며 시원한 그늘에 앉아서 공기놀이도 하고,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엄지와 검지를 튕겨서 아카시아 잎을 누가 더 빨리 따서 없애는 내기도 했다. 가을이면 아직 익지 않은 떫은 땡감과 사과를 몰래 따와서 먹기도 하고, 겨울이면 언덕배기에서 비료포대를 깔고 썰매를 타며 해 지는 줄 모르고 놀았던 동메산이었다.

해가 뉘엇뉘엇 해질 무렵이면 초가지붕 뒤에 솟은 굴뚝에서는 뽀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고, 그때부터 하나 둘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는 엄마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특히 우리 집은  동메산과 높이가 거의 비슷한 제일 높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더 잘 들렸다. '필녀야, 이제 그만 놀고 집에 들어와서 밥먹고 공부해야지'하는 세상에가 가장 다정한 엄마의 목소리와 함께 친구들과 손을 잡고 집으로 내려가곤 하던 행복했던 시절이다.

 

그런데 언제쯤인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친정 부모님 산소를 찾아갔는데, 그 동메산이 헐어져서 밭이 되어 있었다. 옛날 추억을 되새겨 보면서 흔적 없이 사라진 동메산이 몹시 그리웠다. 동메산에 올라가서 그 때 그 친구들 이름을 다시 한 번 불러보고도 싶었다.

언제 어떻게 해서 없어졌는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친정동네에 가면 그 동메산이 있던 자리를 쳐다본다. 그리고 내 어릴 적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산이 없어진 게 몹시 아쉽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오늘은 동메산에서 같이 놀던 친구들이 몹시 그리운 날이다.


070626 / 김필녀

출처 : 독서논술지도사 김필녀서재
글쓴이 : 김필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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