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호흡 / 문태준
꽃이 피고 지는 그 사이를
한 호흡이라 부르자
제 몸을 울려 꽃을 피우고
피어난 꽃은 한 번 더 울려
꽃잎을 떨어뜨려 버리는 그 사이를
한 호흡이라 부르자
꽃나무에게도 뻘처럼 펼쳐진 허파가 있어
썰물이 왔다가 가버리는 한 호흡
바람에 차르르 키를 한 번 흔들어 보이는 한 호흡
예순 갑자를 돌아나온 아버지처럼
그 홍역 같은 삶을 한 호흡이라 부르자.
- 시집『맨발』(창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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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짧은 시간의 단위를 일상에서는 ‘순간’ 혹은 ‘찰나’라고 말한다. 순간은 ‘순식간’의 준말로 ‘눈 깜짝 할 사이’와 같은 의미로 이해되지만, '순식'은 그저 막연히 짧은 정도가 아니라 구체적인 수치단위이기도 하다. 그리고 '찰나'는 '순식'보다 100배나 더 짧은 시간의 단위를 의미한다. 과거 대구세계육상대회에서 우사인 볼트가 인간의 반응속도를 넘어선 0.1초 내 부정출발로 인한 실격은 그야말로 찰나의 충격이라 할만하다. 이런 순간이나 찰나에 비해 숨 한번 들이쉬는 사이 ‘한 호흡’의 구간은 얼마나 느긋한 시간인가. ‘꽃이 피고 지는 그 사이를 한 호흡이라’ 부른다 해도 동의할만하다.
‘썰물이 왔다가 가버리는’ 사이, 계절이 오고 가는 사이, 우리 인생에서 한 매듭을 짓고 다시 한숨 돌리는 사이를 모두 한 호흡이라 해도 되겠다. 순간이나 찰나보다는 조금 길게 숨 한번 크게 쉬는 사이 돈도 권세도 사랑도 영화도 단 한번 왔다가지 않는가. 한 호흡지간에 꽃 피고 지듯 사람도 피었다 지리. 그 사이 내 눈앞의 삼라만상이 모두 들고나는 사이, 애면글면 그대와 만났다 헤어지는 사이, 한해가 시작되고 끝나는 사이, 순환되는 우주원리 속에서 그야말로 한 호흡 들이마시고 내쉬는 동안이 우리의 삶이거늘. 날마다 알람시계에 맞춰 허겁지겁 눈비비고 일어나 잠들 때까지 시간의 노예로 살 것인가.
시간에는 두 종류가 있다. 세슘원자의 92억 번 진동을 1초로 정한 객관화된 양적 시간인 ‘크로노스’와 질적이고 주체적인 시간을 뜻하는 ‘카이로스’가 있다. 크로노스는 가만있어도 똑딱 똑딱 흘러가지만 카이로스는 염원과 갈망에 의해 흘러간다. 즉 카이로스는 자신의 존재의미를 느끼는 상대적인 시간이다. 나이 들수록 관성과 타성으로 점점 매사가 시들해지면서 크로노스의 시간만으로 살지는 않는지. 그래서 옛날이 더 그립다며 ‘응답하라’며 복고에 기대어 카이로스에의 귀향을 꿈꾸는 건 아닌지. 물론 그렇다고 수구를 지지할리야 있을까만 자칫 정신이 혼미해진다면 존재의 의미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럴 때 하늘 한번 보고 작은 숨 한번 쉬는 여유의 시간은 얼마나 소중한가, 하늘에는 왜 별들이 반짝거리는지, 바람은 어디서 불어오는지, 삶이 한철이라면 나는 왜 하필 이곳으로 와서 이렇게 머물다 가는지를 한 호흡의 구간에서 묵상한다. 사람의 육체는 풀과 같아서 금방 시들어 가는데 그 극복을 위해서는 늘 자신을 성찰하며 카이로스의 시간을 사는 수밖에. 카이로스는 더불어 사는 삶과의 관계로 연대성 안에 있는 시간이다. ‘예순 갑자를 돌아나온 아버지처럼’ 그 진창의 홍역 같은 삶을 다 건너 한 호흡 밖의 여분으로 사는 세상이란 또 얼마나 여유로운가. 다시 한 호흡 사이에 매운 칼바람이 불어와도 찡그리지 말 일이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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