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견/ 김재진
나는 오십견이
쉰 살 된 개인 줄 알았다.
오십에도 사랑을 하고
오십에도 눈물이 있는지
비릿한 나이에는 알지 못했다.
오십에 기르게 된 어깨 위의 개들을
풀어놓아 먹이려고 침을 맞는다.
어깨에 꽂힌 이 바늘은
우주와 교신하는 안테나다.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피뢰침 세워놓고
웅크린 채 앉아 있는 이 짐승은
못돼먹은 성깔에 내린 벼락일지 모른다.
벼락 치듯 가버린 친구 한, 둘 늘어나는
쉰 살 된 몸 안에 개들이 살고
부글거리는 속 지그시 눌러 앉히며
양념 센 국그릇에 소 떼가 산다.
오십에도 그리워할 것이 있고
오십의 하늘에도 별이 돋는지
들끓는 나이에는 알지 못했다.
- 시집『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시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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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십견이 쉰 마리의 개를 말하는 줄 알았다. 쉰 마리의 미친개들이 등짝과 어깨에 올라타서 마구 찍고 까불며 들쑤셔대는 듯한 질병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생각했다. 5년 전 내 몸 안에도 그 불청객이 찾아들었다. 설상가상으로 같은 시기에 ‘대상포진’이란 몹쓸 병까지 덤으로 얻었다. 내과적 질환인지 외과적 질환인지 아니면 피부과 보살핌을 받아야할 성질의 질병인지도 분별 안 되는 통증이었다. 왼쪽 겨드랑이에서 등 쪽으로 이동하는 부위의 기분 나쁜 욱신거림. 그때 나의 소망은 돈도 명예도 사랑도 아닌, 민족의 번영과 통일은 더욱 아닌 치사한 내 한 몸의 안위였다.
그즈음 모든 것이 조금씩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몸도 마음도 푸석푸석 풍화되어 가는 느낌이었다. 마주 달려오는 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대책 없이 꼬여가는 일과 삐걱거리는 내 의자의 마찰음이 두려웠다. 둘레의 사람들이 내 삶의 금 밖으로 하나 둘 사라지자 나의 생도 난처해져갔다. 늙은 어머니의 입 벌리고 자는 모습이 불현듯 무서웠다. 화장실 변기 위의 공상이 겁나고 느닷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깜짝깜짝 놀란다. 베개를 가랑이에 끼고 자는 잠버릇이 슬퍼져 주룩 눈물을 흘린다. 뒤돌아보지 마, 곧장 앞만 보고 가라고 했지! 누군가의 협박에 가위눌려 잠이 깬 새벽 세시가 두려웠다.
사람들은 대개 현안의 내 손톱 밑 가시로 인한 고통이 남의 팔 잘린 고통보다 더 참을 수 없어하고 아파한다. 그렇지만 남의 고통에 앞서 내 아픔을 먼저 돌아본다고 무조건 부끄러워하거나 스스로 이기적이라 책망할 수는 없으리라. 우리들이 겪는 생의 힘들고 기막힌 아픔은 누구든지 모양과 색깔만 좀 다를 뿐 다 겪고 있고 가슴에 품으면서 살아간다. 산다는 것은 빛과 그림자처럼 어느 한 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나보다 사정이 나은 이도 수없이 많지만 나보다 더 힘들고 고통 받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우리는 다만 그들과 같은 하늘아래서 그리고 빛과 그늘 아래서 함께 살아갈 뿐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어깨를 무리하게 펴다 오십견이 찾아올 수 있다. 어깨관절 내 염증으로 통증과 함께 어깨 사용이 불편해지는 오십견은 추운 겨울에 많이 생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봄철에 환자가 더 많다고 한다. 3월에는 기온 변화가 심하고 꽃샘추위로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못해 근육과 관절의 유연성이 떨어지는 게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주로 오십줄에 오십견이 찾아오는 이유가 무얼까. '오십에도 사랑을 하고 오십에도 눈물이 있음'을 증명해보이기 위함인가. '오십에도 그리워할 것이 있어' 기지개를 펴긴 하지만 무리하지 말라는 메시지와 더불어 면역기능을 높여주려는 비의는 아닐까.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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