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에 즈음하면/ 유안진

 

 

송년에 즈음하면

도리없이 인생이 느껴질 뿐입니다

지나온 일년이 한생애나 같아지고

울고 웃던 모두가

인생! 한마디로 느낌표일 뿐입니다

 

송년에 즈음하면

자꾸 작아질 뿐입니다

눈 감기고 귀 닫히고 오그라들고 쪼그라들어

모퉁이길 막돌맹이보다

초라한 본래의 내가 되고 맙니다

 

송년에 즈음하면

신이 느껴집니다

가장 초라해서 가장 고독한 가슴에는

마지막 낙조같이 출렁이는 감동으로

거룩하신 신의 이름이 절로 담겨집니다

 

송년에 즈음하면

갑자기 철이 들어 버립니다

일년치의 나이를 한꺼번에 다 먹어져

말소리는 나직나직 발걸음은 조심조심

저절로 철이 들어 늙을 수밖에 없습니다.

 

- 시집『월령가 쑥대머리』(문학사상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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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한 해가 숙연하고 장엄하게 저물어 갑니다. 2001년부터 해마다 연말이면 교수들의 설문조사로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대부분 지난 잘못을 돌아보며 성찰하자는 뜻을 담았는데 해 동안 우리 사회에는 말의 진짜 모습은 볼 수 없었다며 ‘지록위마’를 선정하였습니다. 지난 해엔 순리와 정도를 거슬러 행한다는 뜻의 '도행역시'였고, 2012년에는 지위의 고하를 떠나 모두 다 바르지 않다는 의미를 지닌 '거세개탁'이었습니다. 2011년엔 ‘엄이도종’(掩耳盜鐘)이 선정되었는데 당시 나로서도 처음 듣는 사자성어였습니다.

 

 엄이도종은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 즉 ‘자기가 한 일이 잘못됐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비난이나 비판이 듣기 싫어서 귀를 막지만 소용이 없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라고 합니다. 당시 설문에 참여한 대다수의 교수들은 정치 경제 부문에서의 난맥상, 대통령 측근 비리 등을 예로 들며 '소통부족과 독단적인 정책 강행'을 선택 이유로 꼽았습니다. 실은 그때보다 지금이 더했으면 더 했지 덜하지 않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자신의 귀만 틀어막아서는 아무런 문제도 해결되지 않거니와 나아가기도 힘들 것입니다.

 

 송년에 즈음하여 패착이나 아쉬운 대목에 대해 반성하는 일은 나라나 개인에게나 꼭 필요한 절차일 것입니다. 한해의 끄트머리에 서면 자꾸 작아지는 자신만 느껴집니다. ‘눈 감기고 귀 닫히고 오그라들고 쪼그라들어 모퉁이길 막돌맹이보다 초라한 본래의 내가 되고 맙니다’ 그럴 때 신이 느껴지고 ‘신의 이름이 절로 담겨집니다.’ 일시적인 현상일지는 몰라도 허황된 꿈을 접어 겸허하게 소소한 것에 행복할 줄 아는 가슴이 되게 합니다. 아마 나이를 한 살 씩 더 먹고 둘레의 지인들이 한 둘씩 고꾸라지는 것을 보며 느끼는 삶의 허무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송년에 즈음하면 갑자기 철이 들어 버립니다’ 올 한해 받은 우정과 사랑에 감사한 마음이 생깁니다. 한 해의 잘못을 뉘우치며 겸손한 마음으로 길을 가게 해달라고 소망합니다. 보고 듣고 말할 것들이 너무도 많아 멀미나는 세상에서 마음을 계량하지 않고도 온유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귀를 막고 종을 훔치는 일은 없기를 다짐합니다. 내 나라 내 겨레의 정치와 살림도 그러하기를 소망합니다. 새해에는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보수, 진정으로 성찰하는 진보가 되길 기대합니다. 튼튼한 나이테를 하나 두르면서 절로 철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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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 신평

 

 

이제 막 날갯짓 하려는 아들에게

넥타이 매는법을 가르쳐 준다

그 옛날 아버지가 텁텁한 냄새의 입김으로

나에게 가르쳐 주었던 똑 같은 방법

아버지와 달리 몇 번이나 실패를 거듭한다

 

구부려 올려다보는 아들의 어깨 너머

그가 겪어나갈 신산(辛酸)의 세월이 겹겹이 둘러섰다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 훨씬 더

세상은 차갑고 무섭단다

 

내 힘 한 점 소용없을 때까지

네 기력을 돋울 군불이 되고 싶건만

 

이미 달빛이 된 아버지

나도 곧 달빛으로 오른다

아들은 그 아들에게 넥타이 매는 법 가르치며

그 옛날 자신의 숨결과 닿았던 내 숨결을 기억하리

 

생의 반복은

엄숙하고 슬픈 되새김이다

 

- 격월간『대구문학』2012년 11·12월호(대구문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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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성인으로서 갖춰야 할 갖가지 교양을 일러주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위한 조언도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능력만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이며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 하라고 인생의 선배로서 조곤조곤 말해주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겸손과 배려를 잊지 말라고 귀띔해주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아들도 이미 머리 속으로는 다 알고 있는 내용일지 모른다. 다만 귓불에 스쳤던 아버지의 말씀들은 먼 훗날 은은한 달빛으로 언제까지나 가슴 속에 머물게 되리라. 넥타이를 매주던 그 손길의 온기와 함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아들에게 아버지는 모방과 동경, 동시에 질투와 경외의 대상이라고 했다. 아버지를 통해 비로소 타인과의 관계, 사회적 규범과 이성적 사고를 배운다. 아버지의 꾸짖음을 통해 제멋대로 행동하면 안 된다는 것도 깨닫는다. 청소년기까지 끊임없이 아버지에 반항하며 그 반항을 다스리는 아버지의 권위를 통해 세상에 적응하는 방법을 습득한다. 따라서 아버지는 한 사람의 성격 전반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학습장이다.

 

 오늘날 가정의 많은 문제와 나아가 ‘세대 갈등’은 바로 아버지와 아이가 친구 사이가 되어버린 데서 생겨났다고들 말한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는 절대 친구관계가 아니다. 17세기 사상가 존 로크도 ‘부모는 자식에 대해 절대 권력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응석을 받아주고 꾸짖지도 않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아버지를 어려워할 리가 없다. 아이들은 권위가 없는 사람의 말은 제대로 듣지 않고 믿지도 않는다. 자식에게 위엄도 사랑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던 나 자신 역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은 없다만.    

 

 신평 시인은 서울대 법대를 나온 법관 출신으로 지금은 경북대 로스쿨 교수로 재직 중인 분이다. 그만한 능력과 권위를 갖추었기에 아들에게 신뢰와 애정 어린 숨결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식을 사랑하기만할 뿐 가르치지 않는 아버지가 많은 요즘 현실에서, 이처럼 ‘엄숙하고 슬픈 되새김’의 틀을 반복 유전하는 것은 매우 가치 있고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대한항공 사태를 보면서 다들 느꼈겠지만, 모든 사회구성원의 인성교육은 자식의 귓볼에 닿는 아버지의 숨결에서부터 비롯됨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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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귀로/ 문병란

 

 

서천에 노을이 물들면

흔들리며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우리들은 문득 아버지가 된다.

 

리어커꾼의 거치른 손길 위에도

부드러운 노을이 물들면

하루의 난간에

목마른 입술이 타고 있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또한 애인이 된다는 것,

무너져가는 노을 같은 가슴을 안고

그 어느 귀로에 서는

가난한 아버지는 어질기만 하다.

 

까칠한 주름살에도

부드러운 석양의 입김이 어리우고,

상사를 받들던 여윈 손가락 끝에도

십원짜리 눈깔사탕이 고이 쥐어지는

시간,

 

가난하고 깨끗한 손을 가지고

그 아들딸 앞에 돌아오는

초라한 아버지,

그러나 그 아들딸 앞에선

그 어느 대통령보다 위대하다!

 

아부도 아첨도 통하지 않는

또 하나의 왕국

주류와 비주류

여당과 야당도 없이

아들은 아버지의 발가락을 닮았다.

 

한줄기 주름살마저

보랏빛 미소로 바뀌는 시간,

수염 까칠한 볼을 하고

그 어느 차창에 흔들리면

시장기처럼 밀려오는 저녁 노을!

 

무너져가는 가슴을 안고

흔들리며 흔들리며 돌아오는

그 어느 아버지의 가슴 속엔

시방

따뜻한 핏줄기가 출렁이고 있다.

 

- 시집『땅의 연가』(창비,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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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 예능프로에 소개된 초딩 2학년생의 <아빠는 왜?>라는 시가 있다. ‘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이뻐해주어서/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기발하고 재미난 시이기는 한데, 요즘 아이들에게 아버지란 존재가 냉장고나 강아지보다 더 존재감이 없나 싶어 서글퍼진다. 이 시대 아버지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들고, 우리가 클 때 아버지의 위상과는 큰 편차가 있음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겉으로 표현하지 않을 뿐,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이 달라질 리는 없지 않은가. 김현승은 ‘아버지의 마음’이란 시에서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라고 했다. 공광규는 그의 시 '소주병'에서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에서 아버지의 흐느낌을 들었다. 

 

 시골 사는 한 아버지가 대학생 아들에게 꼬박꼬박 부치던 용돈을 끊었다. 아들이 SOS문자를 쳤다. ‘당신 아들, 굶어 죽음’ 아버지는 즉각 이렇게 회신했다. ‘그래,굶어 죽어라’ 화가 난 아들은 연락을 끊고 오랜 세월 고향을 찾지 않았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 아버지의 부고를 접하고서야 고향집을 찾았다. 아들은 아버지가 남긴 유서 한 장을 발견했다. ‘아들아,너를 기다리다 먼저 간다. 네가 소식을 끊은 뒤 하루도 고통스럽지 않은 날이 없었다. 언제나 너를 사랑했다’

   

 이토록 아버지의 정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오래전 돌아가신 내 아버지도 어쩌면 그랬을 것이다. 시방 내가 작은아이와 불화하여 대면대면 지내듯 긴 세월 서로 냉담했던 아버지였지만 당신께서도 ‘상사를 받들던 여윈 손가락 끝’으로 자식 손에 쥐어줄 ‘십원짜리 눈깔사탕’을 조물거렸을 것이다. 자식놈과의 냉담이 언제 풀릴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서천에 노을이 물들면 흔들리며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우리들은 모두 ‘문득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이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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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두 손 모아/ 박노해

 

 

집 없이 추운 이여

예수님도 집이 없었습니다

 

노동에 지친 이여

예수님도 괴로운 노동자였습니다

 

인정받지 못하는 이여

예수님도 자기 땅에서 배척당했습니다

 

배신에 떠는 이여

예수님도 마지막 날 친구 하나 없었습니다

 

패배에 절망하는 이여

예수님도 영원한 현실 패배자였습니다

 

예수님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피투성이로 품은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자신의 패배와 죽음까지를 끌어안고

그것을 살아냄으로써 부활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당신도 그러할 것입니다

 

이 세상 힘없고 작은 사람 중의 하나인

당신 속에 하느님이 떨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 시집『겨울이 꽃핀다』(해냄출판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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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누구나 고난 없이 편히 살기를 원합니다만 고난과 더불어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고난 없는 삶은 영적으로 불행에 빠지기 쉽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님께서는 태어날 때부터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고난의 연속인 삶을 사셨습니다. 그런 예수님 고난의 의미를 알지 않고는 기쁜 성탄의 의미도 알지 못합니다. 고난주간에만 고난을 묵상할 것이 아니라 삶 가운데서 고난을 생각합니다. 집 없이 추운 사람은 예수님도 집이 없었음을 상기합니다. 노동에 지친 이는 예수님도 괴로운 노동자였음을 떠올립니다. 예수님께서도 배척과 배신을 밥 먹듯 당했으며 현실에서는 영원한 패배자였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우리에게 큰 용기가 되고 위안이 됩니다. 그가 그 고난을 다 감당하고 승리하여 부활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도 고난을 억지로 피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예수님의 사랑을 위한 값진 고난을 교훈삼아 믿음과 희망으로 고난을 극복해야 한다고 박노해 시인은 말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의 이력에 비추어볼 때 자신 또는 자신의 것을 포기하는 고난, 남의 짐을 짊어져 주는 고난, 사명이나 임무를 완성하는 고난, 믿음의 선한 싸움에 승리하는 고난까지 감당해야함을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당신도 그러할 것’이라며 모든 이에게 용기를 북돋우는 말을 전합니다. 이천년 전 세상 사람들로부터 소외되고 조롱받던 세리와 창녀의 친구가 되어주셨듯이 ‘이 세상 힘없고 작은 사람 중의 하나인 당신 속에 하느님이 떨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그 당위를 설명합니다. '예수'의 뜻은 자기백성을 죄에서 구원한다는 말이고, 임마누엘이라는 말은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 때 그 백성만이 아니라 이 시대 온누리에 기쁨과 구원의 희망을 들고 오신 분입니다. 이 고난의 시대에 그런 믿음마저 잃어버린다면 어쩌겠습니까. 오늘은 세상 모든 율법의 완성인 사랑으로 그가 오신 날입니다. 기쁜 성탄일입니다. 

 

 

권순진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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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크리스마스/ 나태주

 

크리스마스 이브

눈 내리는 늦은 밤거리에 서서

집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는

늙은 아내를 생각한다

 

시시하다 그럴 테지만

밤늦도록 불을 켜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빵 가게에 들러

아내가 좋아하는 빵을 몇 가지

골라 사들고 서서

한사코 세워주지 않는

택시를 기다리며

20년 하고서도 6년 동안

함께 산 동지를 생각한다

 

아내는 그 동안 네 번 수술을 했고

나는 한 번 수술을 했다

그렇다, 아내는 네 번씩

깨진 항아리고 나는

한 번 깨진 항아리다

눈은 땅에 내리자마자

녹아 물이 되고 만다

목덜미에 내려 섬뜩섬뜩한

혓바닥을 들이밀기도 한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이브 늦은 밤거리에서

한번 깨진 항아리가

네 번 깨진 항아리를 생각하며

택시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 시집『슬픔에 손목 잡혀』(시와시학사,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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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탄생을 기뻐하며 그 사랑을 실천하고 널리 전파할 것을 마음속 깊이 다짐하는 날이 크리스마스다. 우리 슬픈, 그러나 무작정 환희였던 젊은 날의 성탄전야는 실로 굉장했다. 도심으로 쏟아져 나온 인파와 여기저기서 질러대는 괴성들, 그리고 그날은 초단대목이라 술집과 여관과 택시는 모두 ‘따블’이거나 ‘따따블’이었다. 일년 내내 적막강산이다가 그날 만큼은 자정 이후에도 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이야말로 모두 해방을 맞은 민족들이었고 눈까지 와준다면 눈물을 질금질금 아니 흘리고는 배길 수 없는 성탄일이었다. 하지만 매번 화이트크리스마스의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았고 오늘도 눈이 올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한다.

 

 크리스마스는 눈이 오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공연히 사람들의 심사를 자극하여 왠지 모를 설렘을 갖게 한다. 가장 소중한 사람과의 특별한 밤이길 소망한다. 홀로 지내면서 견딜 수 있는 날이 아니다. 80년대 말 월드스타 강수연이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는 등 최고의 주가를 올릴 무렵 어느 크리스마스이브, 강수연은 큰 아파트의 고층 베란다 창을 모두 열어 재낀 채 모자 푹 눌러쓰고 동네 구멍가게에서 사온 과자 부스러기를 안주로 혼자 소주를 두 병이나 마셨다고 한다. 당시 천하의 강수연이었으니 특별한 스케줄이 분명히 있으리라고 지레 짐작한 지인들이 아무도 그를 부르지 않았던 결과였다.

 

 나도 이제 누구로부터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자는 제의를 받거나, 그랬으면 하고 은근히 반짝이는 눈치를 보내는 사람은 없다. 나 또한 누구에게든지 간에 1순위는 아닐 것이므로 그런 대담한 제안을 하지 않은지 오래다. 도시가구 평균소득의 증가로 엥겔계수는 점차 낮아지고 있다지만 계층간 소득 격차는 더 벌어져, 없이 사는 사람에게는 여전히 먹고 사는 일이 팍팍하다. 나이 들수록 ‘집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는 늙은 아내’말고 다른 상황을 그려볼 기력도 여력도 상상력도 고갈되기 마련이다. 여기저기서 주고받는 성탄 축하인사와 캐롤이 넘쳐 이미 성스러운 밤이다. 산타할아버지는 사라졌어도 곳곳의 빌딩 벽엔 작은 전구들이 황홀한 빛을 연신 게워내고 있다.

 

 나태주 시인은 곡진한 아내 사랑으로 널리 알려진 분이다. 시인은 지난 2월 아내에 대한 헌사를 묶어 시집 <울지마라, 아내여>를 낸 바 있다. '아내4'에서 그는 "으슬으슬 이렇게 추운 나이에 누가 나 같은 사람과 함께 살아 주고 밥 해 주고 빨래까지 해 주겠나! 차라리 그는 하나의 소슬한 역사 아름다운 종교다."라며 납작 엎드렸다. ‘아내가 좋아하는 빵을 몇 가지 골라 사들고’ ‘한사코 세워주지 않는 택시를 기다리는’ 일은 절대로 시시하지 않다. 나도 이 대목에서 배운 대로 동네빵집에나 들렀다가 집으로 가야겠다. 손자 손에 이끌려 잠시 교회에도 다녔다가 지금은 심신이 따라주지 않아 잠자코 있는 늙은 어머니에게 계면쩍은 인사나 해야겠다. "메리 크리스마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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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 골목 / 장만영

 


얼마나 우쭐대며 다녔었나,

이 골목 정동 길을.

해어진 교복을 입었지만

배움만이 나에겐 자랑이었다.

도서관 한 구석 침침한 속에서

온 종일 글을 읽다

돌아오는 황혼이면

무수한 피아노 소리,

피아노 소리 분수와 같이 눈부시더라.

 

그 무렵

나에겐 사랑하는 소녀 하나 없었건만

어딘가 내 아내 될 사람이 꼭 있을 것 같아

음악 소리에 젖는 가슴 위에

희망은 보름달처럼 둥긋이 떠올랐다.

그 후 20년

커어다란 노목이 서 있는 이 골목

고색창연한 긴 기와담은

먼지 속에 예대로인데

지난날의 소녀들은 어디로 갔을까,

오늘은 그 피아노 소리조차 들을 길 없구나.

 

- <문예> 194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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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를 쓴 장만영 시인은 1914년생으로 1975년 세상을 떠났다. 나보다 40년 먼저 나서 딱 지금의 내 나이만큼 살다간 옛 시인이다. 그가 회상한 학창시절은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 경성제2고보(지금의 경복고) 재학시절로 추정되며, ‘그 후 20년’ 세월이 흐른 뒤인 1949년에 발표해던 시다. 비록 가난했지만 도서관에서 온종일 책을 읽을 만큼 학구열이 높았고 자기가 다녔던 학교에 대한 자부심도 컸던 것 같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맘껏 부풀었으며, ‘어딘가 내 아내 될 사람이 꼭 있을 것 같’은 장래의 사랑과 이성을 순수하게 꿈꾸며 동경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다시 찾은 정동골목에는 ‘커어다란 노목’과 ‘기와담’은 그대로인데 ‘지난날의 소녀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그 시절 한 여학생이 쳤을 ‘그 피아노 소리조차’ 들을 길이 없다. 속절없는 삶의 무상과 허망을 느끼는데, 예나 지금이나 어느 누구라도 이런 즈음에 당도해서는 동종의 상념에 젖어들기 마련이다. 나도 고2 때, 그러니까 1970년 어느 가을 길을 가다가 담을 타 넘어온 피아노 선율에 대책 없이 빠져들며 건반을 두드리는 낯모르는 '그녀'의 손길을 한참동안 환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티 없는 학창시절에 대한 회상일지라도 과거 식민시대를 긍정적으로 추억하는 듯한 분위기는 역사인식의 결여란 의심이 살짝 든다. 하지만 순수한 시에 지나친 관찰의 확장은 시 읽는 재미를 반감시킬 수 있겠기에 군말 않기로 한다. 정동은 우리 근대사와 선교의 요람이었다. 지금은 도심의 많은 학교가 강남 등 인구밀집지역으로 이전했지만 당시엔 경복궁과 덕수궁을 중심으로 학교들이 포진하였고 이화여고와 풍문여고는 지금까지 남아있다. 특히 정동교회를 중심으로 왼쪽은 배재학당 오른쪽은 이화학당이 이웃하여 많은 에피소드를 남겼다.

 

 70년대만 해도 ‘우리 배재학당 이화학당 연애합시다’ 고래고래 외쳐대는 배재고의 응원가를 숱하게 들을 수 있었다. 얼마 전 그 정동길을 오랜만에 걸었다. 돌담길 한가운데 우뚝한 고목들과 기와 담도 그대로이고 이문세의 노래에 나오는 ‘조그만 교회당’도 건재했다. 교회를 사이에 두고 수줍게 마주쳤을 숱한 눈동자들은 아련한 그리움으로 증발해버렸지만, ‘그 피아노 소리’ 들렸던 자리엔 나지막한 길손으로 이영훈의 노래비 ‘광화문 연가’가 남아 있었다.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덕수궁 돌담길을 걷는 '다정한 연인들' 몇과 함께.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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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 김광규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 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 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커를 하러 갔고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 시집『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문학과지성사,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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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는 4.19세대인 시인이 18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 그때 친구들과의 세밑 모임에서 느낀 소회를 담고 있다.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고 지금의 소시민적인 삶과 비교하면서 자조하며 회한에 젖는다. 젊은 한 때 내 삶이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방향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생각했고, 내 꿈과 신념이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 믿었던 패기는 온데간데없고, 이젠 다들 현실에 순응하고 타협하면서 안주하는 모습들을 스스로 보인다.

 

 혁명을 품었던 열기는 '옛사랑'이 되어 싸늘하게 식어 있으며, 오히려 지금은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그 ‘그림자’만 부끄럽게 추억할 뿐이다. 세월의 유수에 젊음과 열정, 순수와 이성은 다 깎여버리고 맹목과 복종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까지 비열하게 망가진 삶이 아니라 해도 반항과 저항의 거친 목소리는 '양철북'에서 오스칼이 두드리는 북소리처럼 소시민적인 절망으로 흩어지고 마는 건 아닌가.

 

 에리히 프롬은 ‘회의하고, 비판하고, 불복종하는 능력이야말로 인류 문명의 종말을 막을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능력이 곧 세상을 개혁하고 진보케 함을 잘 알지만. 그러나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며 핏대를 쏘아올릴뿐 ‘모두가 살기위해 살고’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기려 한다.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을 고개 떨군 채 수상히 지나치며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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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 마종기

 

바람 센 도로변이나 먼 강변에 사는

생각 없는 갈대들은 왜 키가 같을까.

몇 개만 키가 크면 바람에 머리 잘려나가고

몇 개만 작으면 햇살이 없어 말라버리고

죽는 것이 쉽게 전염되는 것까지 알고 있는지,

서로 머리 맞대고 같이 자라는 갈대.

 

긴 갈대는 겸손하게 머리 자주 숙이고

부자도 가난뱅이도 같은 박자로 춤을 춘다.

항간의 나쁜 소문이야 허리 속에 감추고

동서남북 친구들과 같은 키로 키들거리며

서로 잡아주면서 같이 자는 갈대밭,

아, 갈대밭, 같이 늙고 싶은 상쾌한 잔치판.

 

- 시집『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문학과지성사,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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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대의 순정이 아니라 갈대의 평등을 노래한 시다. 바람이 불면 금세 한쪽으로 쏠리는 속성 때문에 쉽게 마음이 바뀌는 변절과 연약함의 상징처럼 알려져 있지만 뜻밖에 갈대의 꽃말은 신의와 믿음, 그리고 지혜라고 한다.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중에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이 항상 변하는 …”으로 시작되는 ‘여자의 마음’도 그 속성을 표피적으로만 관찰한 노랫말이다. 그리고 마종기 시인은 갈대에게서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보았다.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살아간다지만 갈대는 잘난 사람 못난 사람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잘 나고 잘 나가는 사람이라도 저 혼자의 탐욕으로 둘레를 무시한 채 돛대처럼 살 수는 없다. 가지런하게 서로 머리 맞대지 않으면 ‘죽는 것이 쉽게 전염되는’ 것을 갈대는 안다. ‘몇 개만 키가 크면 바람에 머리 잘려나가고’ ‘몇 개만 작으면 햇살이 없어 말라’버린다는 사실을 갈대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 신뢰하는 가운데 상생의 지혜로 공존할 줄 안다고 해서 붙여진 꽃말일는지 모른다. 시인의 또 다른 시 ‘갈대의 피’에서는 ‘내가 갈대를 좋아하는 이유는 죽은 듯 살아 있고 살아 있는 듯 몸을 흔들며 죽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죽고 사는 것이 같이 잘 섞여서 죽은 갈대가 산 것과 같이 노래하고 산 갈대가 죽은 갈대를 안고 춤추’는 것까지 시인은 보았다.

 

 갈대의 삶에는 그 어디에서도 오만을 찾아볼 수 없다. 자연과 다른 생명은 물론 인간의 인간에 대한 오만을 시시때때로 목격하는 현실과 견주어볼 때 갈대는 참으로 속 깊고 의젓하다. 언제나 생의 쓰라림은 차별과 소외에서 비롯되었고. 인간의 경박한 오만이 갈등을 심화 확산시켰다. 대한민국은 1년 내내 정치와 재난, 가십과 찌라시가 술을 먹이고 안주가 되어 사람들을 핏발선 대폿집 우국지사로 만든다. 하나의 이슈가 불판에서 노릿하게 익어갈 즈음 또 다른 안주가 뜨겁게 달궈진다. 의혹이 증폭되고 그 의혹에 맞선 대항논리가 준수할수록 그 사이로 침이 튀기고 안주는 제대로 구워진다.

 

 하지만 공동의 책임은 무책임이 되고, 서툰 노변정담은 화로 속의 재로 남아 달라지는 것은 없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뱉어낸 가난한 낱말들만이 차가운 식혜 위의 밥알처럼 동동 떠다닐 뿐이다. 그리고 안주감은 늘 새로운 메뉴로 다시 바뀐다.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횡포까지 겹쳐 비애와 상실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가지고 배웠고

 누리는 자들이 좀 더 겸손할 순 없는 걸까. 예의와 염치는 가자지 못한 사람들의 몫인가. 정치는 겉돌고 최악의 버전으로 치닫고 있다. 시민사회도 무기력하기만 하다. 능력과 철학 없는 정권에 대안 세력도 눈에 띄질 않는다. 텅 빈 그릇이면서 가득 찬 광장 같은 대폿집에서 누구의 이름을 부를까. ‘같이 늙고 싶은 상쾌한 잔치판’은 언제나 올지.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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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사랑 / 고정희

 

그 한번의 따뜻한 감촉

단 한번의 묵묵한 이별이

몇 번의 겨울을 버티게 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이 허물어지고

활짝 활짝 문 열리던 밤의 모닥불 사이로

마음과 마음을 헤집고

푸르게 범람하던 치자꽃 향기,

소백산 한쪽을 들어올린 포옹,

혈관 속을 서서히 운행하던 별,

그 한번의 그윽한 기쁨

단 한번의 이슥한 진실이

내 일생을 버티게 할지도 모릅니다

 

- 시집『아름다운 사람 하나』(푸른숲,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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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퇴출된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니?' 식의 닝닝하고도 통속하기 그지없는 낡은 질문들, 그걸 심심하게 묻고 답했던 시절의 '미팅'에선 어떤 계절을 좋아하냐는 간지러운 문답도 흔히 주고받았다. 아니 지금도 순진무구한 학생들 사이엔 소품종으로 수줍게 유통되고는 있다. 그 대꾸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격을 대충 간본다든지, 자신과의 주파수를 맞춰보고는 했다. 그때 겨울이 좋다고 하면 순결과 이성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져 도도한 낭만파일 것이라고 간주하는 경향도 있었다. 그것은 계절 간 선호 조건의 포괄적인 계량과 면밀한 비교에 의해서가 아니라 한두 가지 평범한 이유에 이끌려 즉흥적으로 내뱉는 경우가 많았다. 그저 느낌이 좋은 순백의 강하물 때문에, 혹은 긴 방학이 있어서, 성탄절의 해방공간이 주는 매력, 그리고 겨울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는 점 등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겨울의 가장 깊은 매력은 그 차가움으로 뜨겁게 사랑을 촉진시킨다는 데 있지 않을까. 고정희 시인과는 성만 다른 문정희 시인도 '겨울사랑'에서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고 했다. 고양된 격정은 고정희 시인의 ‘겨울사랑’과 다를 바 없다. 확실히 겨울은 그 '따뜻한 감촉'으로 커피의 맛은 깊어지고 라면과 김치찌개도 더 맛있어진다. 그리고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난해한 말도 있듯이 겨울밤은 사랑의 역사가 무르익기 딱 좋은 계절이다. 고슴도치의 겨울나기 방식으로 연인은 가급적 밀착, 밀착 또 밀착이다. 이 겨울은 연인들 사이의 거리를 물리적으로 좁혀준다.

 

 이십대를 고스란히 통금에 묶여 보내야 했던 겨울 밤. 유일하게 성탄전야와 한 해를 갈아치우는 날만 사슬이 풀렸다. 넘쳐나는 명동의 인파, 그리고 광복동과 동성로와 충장로는 젊은이와 나이든 이가 함께 점령한 거대한 주둔지였다. 고성과 교성 뜨거운 홍소, 그럴 때 눈이라도 내리면 혼자라는 것은 죄악이고 수치였다. 하지만 사랑이 뜨거워지면 별사를 완성하고 노래 부르기에도 마침맞은 계절 또한 겨울이다. 누구에겐들 이 겨울, 눈내리고 녹는 동안 더운 사랑과 아린 이별의 추억이 감긴 한 롤의 필름이 없으랴. 고정희 시인도 못 잊을 사랑 하나 품고서 몇 번의 겨울을 버티며 온 생을 떠받들었다고 하니 '이슥한 진실'의 더운 사랑 하나는 가졌나 보다. 지상에 없는 그녀는 지금 '치자꽃 향기 푸르게 범람하는' 어느 별에서 이 겨울과 입맞춤할는지.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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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에는 승부로 가자
      碧波 金哲鎭  碧波
      
      겨울에는 승부로 가자
      사랑하는 사람아
      추억 속의 첫사랑은 잊어버리자
      시방 가슴 뜨거운 사랑만으로
      눈꽃열차를 타고
      원주 제천 단양 영주 봉화를 지나
      하얀 눈에 덮인 간이역 승부로 가자
      바래미 낡은 기와지붕의 눈을 보면서
      화롯불에 알밤으로 익던 할매의 얘기
      구수한 냄새로 기억해도 좋다
      차창을 스치는 설송의 눈꽃을 보며
      우리의 하얀 사랑을 이야기해도 좋다
      식당칸에 나란히 앉아 아무 말없이
      뜨거운 한 잔의 커피 향을 마셔도
      우리는 행복한 한 쌍의 연인
      동화 속 꿈꾸는 산노루 되어 우리
      눈빛 마주 웃으며 저 눈산을 달리자 
      사랑하는 사람아
      겨울에는 승부로 가자
      TU-021015 
      
출처 : 碧波 藝術村
글쓴이 : 雅靜 김필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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