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욤나무 앞에 서면

 

김필녀

 

 

감꽃인가 싶어 주웠더니

고욤나무 꽃이다

가지마다 주렁주렁

작은 종처럼 매달린 꽃 속에

유년의 고향집이 보인다

어둑한 고방 항아리에서 곰삭던

그 달디 단 맛

입 안 가득 남겨지던

까만 씨앗까지도 그립다

빈터로 남은 고향집을 지키는

고목으로 남아

눈길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는

변방의 나무로 남았지만

볼품없는 열매에 씨앗만 가득 담는

고욤나무 앞에 서면

내 살과 뼈를 여물게 하셨던

쪽진 어머니 모습이 떠오른다

 

- 18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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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의 우화羽化

 

김필녀

 

 

한 낮

집 앞 느티나무에서

처음으로 들려오는 매미소리

해마다 듣는 소리지만

칠년을 기다려 내뱉는 환희의 소리

유난히도 가슴을 울린다

나의 내공은 얼마나 될까

한 이레, 아니다

채 일곱 시간도 되지 못할

지나온 삶을 돌아본다

더 오래 인내하며 살다보면

저리 원 없이 질러대는 매미처럼

나의 노래도 목청껏 부를 날 오리니

아직도

살아갈 이유가 남아 있어 행복한

한여름의 이글거리는 태양을

오늘도 품어 안는다

 

- 180714

 

 

 

The Poet And I (시인과 나) - FRANK MILLS

 

작약꽃에게 미안하다

 

김필녀

 

싹둑싹둑

반복되는 가위질소리

채 피지도 못한 채

목이 꺾인 꽃봉오리

땅에 떨어질 때마다

내 몸도 함께 오그라진다

 

꽃이 어찌 뿌리보다 아름답지 않을까

꽃이 어찌 뿌리보다 유용하지 않을까

 

한쪽이 없어져야

다른 한쪽이 살아남는 세상사

내 몸이 닳아 없어진다 해도

멈출 수 없는 가위질

먼 산 뻐꾸기 소리에 잠시

잔혹한 손놀림 멈추고 하늘을 본다

 

- 180511 / 초고

 

 

출처 : 마 캐는 시인, 김필녀 시인의 아정농원
글쓴이 : 김필녀 원글보기
메모 :

 

 

 

새봄의 정기를 품다

 

김필녀

 

 

봄비 머금은

무거운 흙을 밀고 솟아오르는

저 여린 새싹의 힘을 보라

무엇이 두려우랴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바람 불면 부는 대로

흔들리며 더불어 사노라면

바위도 뚫을 수 있는

삶의 지혜도 터득하리라

조팝꽃 피는 밭둑에 홀로 앉아

땅 밑에서 들썩이는 봄의 정기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며

온몸으로 품어 안는다

희망의 새봄을 맞았으니

몸과 마음 갈고 닦으며

성숙한 가을을 기다리자

 

- 180412 / 초고

 

 

 

 

 

 

 

암산스케이트장을 가다

 

김필녀

 

 

세상이 꽁꽁 얼어붙었다. 겨울이 깊을수록 봄이 가깝다고 하니 참고 인내하면서 따스한 봄을 손꼽아 기다리는 일이 땅을 일구어 가꾸는 농부의 겨울나기일 것이다.

 

겨울은 추워야 제격이라지만 맹위를 떨치는 추위가 이어지면서 독감 환자들로 병원마다 북새통이다. 늘 건강에 자신했던 나도 지독한 감기몸살로 여러 날을 앓았다. 입맛이 달아나면서 음식을 먹을 수 없어 더 고생을 한 것 같다. 바쁜 농사철에 몸을 너무 혹사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이제는 건강에 신경을 써야 할 나이도 되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암산스케이트장을 오랜만에 찾았다. 겨울방학을 맞아 외갓집에 온 외손주에게 추억거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꼭꼭 싸매고서 길을 안내했다.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 졸업을 한 이후 처음으로 찾았으니 25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예전보다 주변 환경들이 잘 정비되어 있어 마음이 더욱 들떴다.

 

안동이 고향인 분이라면 한 번씩은 다 찾았을 추억의 장소인 암산스케이트장. 추운 날씨에도 겨울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스케이트와 썰매를 타며 즐거운 표정들이다. 스케이트와 썰매도 빌려주고, 주변에 매점과 카페도 있어 가족들이 겨울 한나절을 즐기기에 손색이 없었다.

 

시집간 딸도 오랜만에 스케이트를 타면서 사위와 외손주 앞에서 은근히 실력을 과시했다. 일곱 살짜리 외손주도 난생 처음으로 스케이트를 신고서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도 즐거운 표정이다. 미끄러운 얼음 위에서 쩔쩔매는 어린 아들에게 스케이트 타는 법을 가르치는 딸과 사위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이들 초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두 살 터울이었던 남매가 다녔던 초등학교에서는 겨울방학 때마다 교내 스케이트대회를 개최했다. 달리기를 잘해 운동회 때마다 일등을 도맡아 하던 남매는 스케이트도 다른 아이들보다 월등하게 잘 탔다. 아이들의 잠재능력을 일깨워주기 위해 스케이트 레슨을 시키면서 추위도 잊은 채 암산스케이트장을 오가며 열성적으로 뒷바라지 했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세월이 참으로 빠른 것 같다. 코흘리개였던 딸은 어느덧 시집을 가서 아들을 둘이나 두었고, 착하고 운동을 잘하던 아들도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 세월만큼 내 나이도 더해져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외손주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모르는 외할머니가 되었다.

 

겨울방학이라 그런지 스케이트장에는 딸과 사위처럼 젊은 부모들이 대부분이다. 유치원이나 초등학생인 자녀들에게 스케이트를 가르치고, 썰매를 밀어주면서 마냥 행복한 모습들이다. 나도 저 나이 때는 내 인생에 꽃길만 펼쳐지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인생길이 꽃길만 이어진다면 살아볼 가치가 있었을까.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만나 신발 끈을 다시 고쳐 매며 잠시 쉬어가기도 하다가, 진창길에 빠져 허우적대며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더 큰 행복을 찾아 전화위복이 될 때도 있었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얻은 소중한 인생경험을 밥상머리에 앉아 잔소리처럼 하는 훈육이 자식들의 앞날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 나이가 들면 저절로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한국 철학계의 대부로 불리는 <백년을 살아보니>의 저자 김형석 교수는 “100세까지 후회 없이 건강하게 잘 살고 싶다면 인생의 황금기인 60~75세를 잘 보내야 한다고 말한다. 인생의 가정 절정기가 청년시기가 아리라 인생의 매운맛과 쓴맛을 다 본 다음에 무엇이 중요한지를 진정 음미할 수 있는 60~75세가 우리 인생의 절정기라고 한다. 그 나이가 되어야 생각이 깊어지고 행복이 무엇인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게 된다고 한다.

 

세상에는 그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런 헌신과 희생으로 한 세대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내가 자식에게 정성을 다했듯이 내 자식들도 그러한 삶을 이어가리라 믿어본다. 김형석 교수가 말하는 인생의 절정기인 이순을 넘었으니 그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곧고 바른길을 걷도록 더욱 노력해야겠다.

 

배가 출출해서 매점으로 향했다. 웃음꽃이 핀 가족들로 테이블마다 만원이다. 겨우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라면과 어묵을 시켰다. 운동을 해서 그런지 평소에 입이 짧은 외손주도 볼이 미어터지도록 잘도 먹는다. 재미가 붙었는지 잠이 든 16개월짜리 둘째 외손주를 맡겨놓은 채 스케이트를 타러 가는 뒷모습이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안동시 남후면에 위치한 암산스케이트장은 전국 최고의 천연빙질 스케이트장이다. 중앙고속도로 남안동 나들목에서 안동방면 약 7지점에 위치한 암산유원지는 기암절벽을 끼고 도는 낙동강의 지류를 따라 봄, 여름, 가을에는 야영지와 보트장으로 사용되다가 겨울에는 강물이 꽁꽁 얼면서 천연 야외 스케이트장으로 탈바꿈한다.

 

유원지 뒤쪽으로는 18세기 유학자인 문경공 대산 이상정(李像靖, 1711~1781)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경상북도 기념물 제56호 고산서원(高山書院)이 있고 앞쪽으로는 관목모양으로 자라는 측백나무 자생지가 있다. 이곳의 측백나무는 약 400여 그루가 암벽바위 사이에 자라고 있으며 1975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암벽 아래로는 주민들이 직접 바위를 뚫어 만든 자연 터널이 있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 주민들이 강제 동원돼 만들어 졌다고 알려져 있으며, 예전에는 안동 의성 간 국도로 사용됐으나 지금은 5번 국도가 4차선으로 확장되면서 추억의 옛길이 되었다.

 

지금 암산유원지 일원에서는 ‘2018 안동암산얼음축제가 개최되고 있다.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절기인 소한과 대한 사이에 개최되는 암산얼음축제는 이상고온으로 얼음이 제대로 얼지 않아 3년 연속 축제준비 중에 취소되기도 했다. 올해는 안동시와 안동소방서, 안동시재난안전네트워크가 합동으로 실시한 빙판 안전점검 결과 행사장 얼음두께는 2842cm 수준으로 적합판정을 받음에 따라 축제가 열리게 되었다.

 

어린이에게는 꿈과 희망을, 어른에게는 추억과 향수를안겨 준다는 캐치프레이스로 열리는 안동암산얼음축제는 가족형 겨울놀이 체험 이벤트라는 정체성에 걸맞게 빙어낚시와 송어낚시 체험, 스케이팅, 썰매타기, 팽이치기 등 대표적인 겨울놀이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 아울러 얼음빙벽 조성, 얼음조각 전시, 놀이단 ()식구운영 등을 통해 겨울축제 분위기를 한껏 돋우고 있다.

 

일찍 다녀간 외손주는 이번 암산얼음축제에는 참석을 하지 못했다. 내년 겨울방학에는 얼음축제 기간에 맞춰서 다시 찾아야겠다. 온 가족이 함께 빙어 낚시도 해보고, 여러 가지 체험도 하면서 어릴적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고 싶은 외할머니 마음을 꼭 전해주고 싶다.()

 

 

- 격월간지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2018년 1,2월호(통권 169호)

- 김필녀시인의 농장일기

 

 

 

출처 : 마 캐는 시인, 김필녀 시인의 아정농원
글쓴이 : 김필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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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극 몰아보기

 

김필녀

 

 

한파에 발이 묶인

젊지도 늙지도 않은 부부가

따끈한 아랫목에 나란히 앉아

리모컨을 돌려가며 무료함을 달래고 있다

바쁜 농사철에 드문드문 보았던

연속극 몰아보기에 재미를 붙인 채

고달픈 세상사 잠시 잊고

바보상자 앞에서 울고 웃는다

삶의 고비 때마다 서로 의지하며

가려운 등 긁어주며 함께 살아온

끈끈한 부부의 정 앞에

매서운 겨울바람도 비껴간다

 

- 180118

 

 

 

♬ 김남조 작시 / 김순애 작곡, 그대 있음에

 


 

 

 

 

 

 

 

고드름

 

김필녀

 

 

세상사 무덤덤해지면서

눈물도 메말라갔다

작은 기쁨에도

잇몸 활짝 들어내며 웃어 제키고

소소한 슬픔 앞에서도

펑펑 눈물 쏟아내던 시절이 그립다

소한小寒 칼바람 앞에서도

답답하던 속내 꿋꿋하게 참아내며

거꾸로 탑을 쌓아가는 고드름

높이 쌓은 탑도 언젠가는 쓰러지거늘

낮아지고 낮아져 땅속 깊이 스며들어

작은 풀씨 하나 잠 깨우는 일이

더 큰 수행이고 행복이란다

산다는 것은 견디는 일

울고 웃으며 속으로 다독이며 살다

한 줌 흙으로 돌아가 밑거름이 된다는 것

거꾸로 탑을 쌓아가는 고드름 앞에서

한 생을 조용히 되짚어본다

 

 

- 180115

 

 

 

♬ 소프라노 강혜정 / 고백하지 못한 사랑

 

 

 

 

콩 타작

 

김필녀

 

 

첫눈이 내렸다. 첫눈치고는 제법 많이 쌓여 새벽부터 마음을 들뜨게 한다. 절기상으로도 소설을 지났으니 하얀 눈이 제격인 겨울이다. 첫눈이 내린 날, 옛 추억도 더듬을 겸 가까운 봉정사라도 다녀와야겠다.

 

그토록 기다리던 농한기가 시작되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고 하던 광고 카피가 생각난다. 무량하게 안겨주기만 하던 대지도 휴식이 필요한 법. 겨울동안 푹 쉬어야 내년 봄에 다시 씨앗을 품어 풍성함을 안겨 줄 것이다. 땅을 가꾸어 양식을 얻는 농부들도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하며 지친 몸을 추슬러야 다시 힘을 얻을 수 있으리니.

 

시설 농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콩 수확을 마지막으로 한해 농사를 마무리 짓는다. 농협에서 정선해온 콩 포대를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올리며 아정농원도 올해 농사를 마무리 지었다.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부지런히 땅을 일구어 곳간을 그득하게 채운 뿔농군 부부도 그동안 고생했다며 서로 다독였다.

 

올해는 메주콩 농사를 많이 지었다. 밭이 묵는다며 꼭 좀 부쳐달라고 집까지 찾아온 이웃 어르신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파종시기가 끝나가는 어중간한 시기여서 콩을 심기로 했다. ‘가뭄에 콩 나듯 한다는 속담이 무색할 정도로 봄 가뭄이 심해 드문드문 싹이 올라와서 빈곳마다 손으로 일일이 다시 심었다. 그 정성이 대견했는지 콩 농사가 잘 되었다.

 

다른 작물에 비해 콩 농사는 비교적 쉬운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풀만 몇 번 뽑아준 다음에 웃자람을 방지하기 위해 순만 쳐주면 된다. 종자 값도 저렴하고 퇴비나 비료, 농약을 안 해도 되니 농자금도 적게 든다. 그 대신에 콩 순이 올라오는 대로 뜯어먹는 고라니에 대한 대비는 필수로 해야 한다.

 

노랗게 단풍이 들었던 콩잎이 떨어지고 바싹 마른 줄기와 꼬투리만 남은 콩을 잘라서 탈곡을 시작했다. 기계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타작을 하면서 생기는 먼지는 피할 수가 없었다. 모자와 마스크로 완전무장을 한 채 타작을 하다 보니 고향집 마당에서 콩 타작을 하던 옛날 정경이 아련히 떠올랐다.

 

예전에는 도리깨로 콩 타작을 했다. 싸리 빗자루로 마당을 깨끗하게 쓴 다음에 마당가에 쟁여놓았던 콩 단을 펼쳐 놓고 아버지와 일군이 마주 서서 장단을 맞추어가며 도리깨질을 했다. 날렵한 도리깨가 휙휙 소리를 내며 콩을 내리칠 때마다 콩깍지가 벌어지며 콩알이 떨어졌다. 줄기와 콩깍지를 골라내고 소복이 떨어진 하얀 콩을 모아 풍구질을 해가며 이물질을 제거하곤 했다.

 

도리깨질을 반복하는 동안 어머니는 마당가에 흩어진 콩을 쓸어 담아 키질을 하셨다. 멀리 튀어 다 줍지 못한 콩은 몇날 며칠을 두고 바가지에 주워 담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콩 한 알이 모여 한 되가 되고, 한말이 모여 한가마니가 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던 것이다. 그 모습이 아른거려 콩 타작을 하는 동안 땅에 흩어진 콩을 주워 담느라 엉거주춤 애를 많이 썼다.

 

풍구질을 한 콩은 턱이 있는 두레상에 펼쳐 놓고서 쭉정이와 깨지고 못난 콩을 골라내는 일도 어머니 몫이었다. 두꺼운 돋보기를 쓰고 콩을 고르는 어머니를 도와준다고 마주 앉았지만 금방 졸거나 슬그머니 자리를 피한 적이 대부분이었다. 눈이 아프도록 골라낸 굵고 좋은 콩은 종자로 갈무리를 하고, 남은 콩으로 메주와 청국장을 만들거나 장에 내다 팔기도 했다.

 

집집마다 메주를 쑤는 일도 지금쯤일 것이다. 커다란 쇠죽솥을 깨끗하게 씻어 메주콩을 삶아내던 날은 하루 종일 배가 불렀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삶은 콩으로 메주를 만드는 동안은 실컷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안방 시렁에는 짚으로 매단 메주가 주렁주렁 달리고, 따스한 아랫목에는 청국장 시루가 이불을 덮고 있던 고향집 풍경이 그저 그리울 따름이다.

 

세상 모든 것이 좋아진 만큼이나 농기계도 점점 최첨단화가 되어가고 있다. 콩을 정선해주는 기계도 못난 콩과 돌을 걸러주는 것은 기본이고 색깔 선별까지 해주어 참으로 편리하다. 선별이 잘 된 노란 메주콩이 다른 집 콩보다 탱탱하고 좋아 보이는 것은 직접 땀 흘려 농사를 지었기 때문일 것이다.

 

올 겨울에는 내 손으로 키운 콩으로 직접 메주도 쑤고, 청국장도 만들어 볼 참이다. 잘 뜬 메주로 내년 봄에는 된장도 담그고 고추장도 담아 볼 요량이다. 친정어머니 돌아가시고 엄마 같은 큰언니한테 오랫동안 얻어먹기만 했다. 이제는 시집간 딸한테도 된장과 고추장만큼은 직접 담아 친정엄마의 손맛을 보여줘야 할 나이인 것 같다. 처음 하는 일이라 맛있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정성을 다한다면 안 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웃에서 가져다주는 김장김치가 냉장고에 그득하다. 시골에서만 느낄 수 있는 사람냄새 나는 정 나눔이다. 등 따시고 배부른 농한기까지 겹치니 어느 해보다도 따스한 겨울이 될 것만 같다.()

 

 

- 격월간지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2017년 11,12월호(통권 168호)

- 김필녀시인의 농장일기

 

 

 

출처 : 마 캐는 시인, 김필녀 시인의 아정농원
글쓴이 : 김필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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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지으랴, 멧돼지 쫓으랴

 

김필녀

 

가을은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했다. 올려다본 하늘이 푸른 물감을 풀어놓은 듯 눈이 부신다. 풀벌레 소리에서 가을이 익어가고,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구월에는 배가 부르다고 한다. 혀끝에서 느끼는 가을의 맛이 이렇듯 감미로운데 구월도 어느덧 끝자락이다.

 

가을의 전령사인 코스모스와 함께 백일홍이 가을볕을 즐기고 있다. 담장 높은 집보다는 허물어져가는 토담집 좁은 화단이 더 어울리는 꽃이다. 무더위가 한창일 때부터 피어 어설픈 우리 집 화단을 환하게 밝혀주더니 계절을 넘나들며 바쁜 주인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있다. 나의 삶도 화무십일홍이 아니라 화사하면서도 단아한 백일홍처럼 오래 피어도 시들지 않고 늘 곁에 두고 싶은 삶이었으면 좋겠다.

 

한가위를 앞둔 농촌풍경은 어디를 가도 풍성함으로 그득하다. 황금들판과 푸른 하늘이 맞닿은 곳곳마다 추수를 앞둔 농부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저 풍요로움 뒤에는 하늘과 땅의 조화로움과 농부들의 땀방울이 함께 하고 있음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나 또한 땅을 일구고 가꾸어 본 뒤에야 깨달았으니 농자지천하대본이라는 말이 구시대 유물이 되어버린 것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세상살이가 녹록하지 않겠지만 어느 해보다도 농부들의 삶이 힘든 한 해였다. 봄 가뭄과 늦장마로 인해 농작물 작황이 좋지 않은데다 얼마 전에는 돌풍과 함께 우박까지 내려 추석 대목을 앞둔 과수농가의 피해가 심각하다. 거기다가 멧돼지와 고라니 등 유해야생동물의 피해까지 잇따르면서 농부들의 한숨이 더욱 깊어지는 것 같다.

 

아정농원도 고구마 밭 일부가 멧돼지의 습격을 받아 적지 않은 피해를 보게 되었다. 우리뿐만 아니라 이웃 농가들도 자고 일어나면 수확을 앞둔 고구마 밭이 쑥대밭이 되어갔다. 면사무소에 신고를 했지만 별 뾰족한 대책이 없었다. 포수가 와서 잡는 방법과 전기울타리를 설치하는 방법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명사수인들 울창한 숲속에 숨어 있는 멧돼지를 언제 잡을 것이며, 전기울타리 또한 금방 설치되는 일도 아니었다.

 

가뭄에 물을 주며 애지중지 키우던 고구마 밭을 가만히 앉아서 빼앗길 수만은 없었다. 총소리가 나는 기계와 라디오도 틀어놓고 전기 네온사인도 밝혀 놓은 채 밤낮으로 농장을 순찰했다. 어느 날 아침에는 고구마를 파먹고 있는 새끼멧돼지 다섯 마리와 마주치기도 했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도망갈 생각도 하지 않고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쫓을 생각보다 어미 멧돼지가 덮칠까 겁이 나서 서둘러 농장을 빠져나오기 바빴다.

 

새끼멧돼지들과 마주친 얼마 후에 우리 지역 담당 포수에게서 어미 멧돼지는 잡히고 새끼들만 돌아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빤히 쳐다보던 새끼들 이 떠올랐다. 나도 어미고 할미여서일까, 어미 잃은 새끼들이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걱정과 함께 가엾다는 생각이 잠시잠깐 들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남은 고구마 밭에 울타리를 치기로 했다. 전기울타리는 비용도 많이 들뿐 아니라 시간이 오래 걸려 당장 설치할 수가 없었다. 바다에서 김 양식을 할 때 쓰던 폐 그물망이 전기울타리보다 효과가 있다고 해서 물어물어 어렵게 구해서 농장마다 설치를 했다. 그 이후로는 발을 뻗고 잠을 잘 수 있었다.

 

멧돼지들이 파먹고 남은 고구마를 수확하면서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사람이 어쩌다가 동물들이 먹다 남긴 이삭줍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사람이 동물보다 못난 세상인지, 동물이 사람보다 잘난 세상인지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어릴 때 뽀얗게 서리가 내린 논바닥을 다니며 벼 이삭을 줍던 풍경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지금이야 벼가 마르기도 전에 콤바인으로 추수를 하니 이삭이 떨어질 리도 없고, 설령 떨어진다고 해도 줍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예전에는 논에서 바짝 마른 벼를 낫으로 베어 묶고, 지게로 날라서 타작을 했으니 이삭이 논바닥에 많이 떨어졌다. 이삭 줍는 일은 아이들 몫이었지만 메뚜기 잡는 일에 더 정신을 쏟았던 기억이 난다.

 

좀 넉넉한 집안에서는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일부로 이삭줍기를 하지 않는 집도 있었다. 감자와 고구마도 대충 줍고 짧은 이랑은 그냥 두어 캐가도록 인정을 베풀었다.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이었지만 배를 곯고 있는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 씀씀이가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아닐까 싶다.

 

인과응보라고나 할까. 사람들의 욕심으로 말미암아 먹이사슬이 파괴되어 야생동물들의 개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고 한다. 그런데 산에는 먹이가 부족하니 민가로 내려와서 애써 지은 농작물에 피해를 주고 있다. 어쩌면 야생동물들도 위험을 무릅쓰고 민가로 내려오는 것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알밤과 도토리가 익어 떨어지는 계절이다. 욕심을 앞세워 싹쓸이하지 말고 야생동물들 몫은 남겨두고 줍는 아량을 베풀어야 할 때다. 그래야 먹이사슬이 되살아나고 자연환경도 좋아진다. 더불어 삶의 질도 높아지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갈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지 2017년 9,10월호(통권 167호)

- 김필녀시인의 농장일기

 

 

 

출처 : 마 캐는 시인, 김필녀 시인의 아정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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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농군의 좌충우돌 농사이야기

 

김필녀

 

꿉꿉한 장마철이다. 하늘과 땅이 젖어있으니 마음까지 축축하다. 울적한 주인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장맛비를 맞으며 원추리와 나리, 해바라기가 활짝 피어 인사를 건넨다.

 

지독한 봄 가뭄으로 인해 마실 물을 걱정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비가 너무 많이 내려 걱정이다. 절기에 맞도록 적당하게 비를 뿌려주면 좋으련만 인간들의 지나친 욕심을 일깨워주고 싶었는지 베풀기만 하던 자연도 가끔은 심술을 부린다.

 

올해 장마는 지역마다 편차가 크다. 장마철인데도 가뭄이 해갈되지 않는 지역이 있는가하면, 게릴라식 집중호우가 내려 수해를 입은 지역도 있다. 수마가 휩쓸고 간 삶의 터전과 논밭을 쳐다보며 탄식하는 농민들의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우리지역은 피해가 크지 않아 다행이다. 논물이 넉넉하진 않았지만 지하수를 퍼 올려가며 모심기도 제때 했고, 밭작물도 예년보다 흉작이긴 해도 다른 지역에 비하면 괜찮은 편이다. 농사는 하늘이 도와줘야 풍년이 드는데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다는 것을 초보농군도 터득했기에 묵묵하게 땀을 흘리고 있다.

 

불쾌지수가 높은 장마철에는 입맛도 잃기 쉽다. 보양식도 좋지만 푹 찐 호박잎에 풋양대를 넣고 지은 밥을 된장과 함께 쌈을 싸서 먹으면 잃었던 입맛도 돌아온다. 친정어머니가 좋아하셨던 장마철 별미였는데 남편도 좋아해서 자주 해먹는다.

 

장맛비가 잠시 그친 사이 심심하던 남편이 텃밭으로 나가더니 목청을 높인다. 큰 바구니를 가져오라기에 오이나 가지, 토마토를 따놓은 줄 알았다. 가뭄에 목이 타들어가다 장맛비에 마른 스펀지 물 흡수하듯이 흡입하며 영글어가던 풋양대가 주인의 손에 무참하게 뽑혀 예주룩 누워있었다.

 

혼자 큰일을 했다는 듯이 의기양양하게 쳐다보는데 할 말이 없었다. 영글지 못해 꼬투리가 납작한 양대가 반 이상이 되었다. 머쓱해할까 싶어 최대한 부드러운 말로 한마디 건넸다.

여문 포기만 골라서 뽑아야지, 양대 여문 것도 모르는 농부가 무슨 농사를 짓는다고…….”

 

큰 것은 잘 처리하면서도 작은 이치를 깨닫지 못하는 남자들이 참 단순하다고나 할까. 하기야 언제 여문 완두콩이나 풋양대 꼬투리를 까본 적이 있었겠는가.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평생 공직에 있다 퇴직 후에 농사를 시작했으니 실패를 거듭하며 하나둘 배워가는 것이 당연하리라. 어쩌면 농사를 지어보지 않았기에 가지 않은 길에 과감하게 도전을 했는지도 모른다.

 

올해 처음으로 양대를 한줄 심었다. 가뭄에 물도 주고 정성을 다했지만 제대로 영글지 못해 수확시기를 미루어 왔다. 가끔 텃밭에 나갔다가 영근 꼬투리만 골라 따서 양대밥을 해 먹었던 것이 탈이었다. 진정한 농부가 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더 배울 것이 남아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아본다. 농사 경력 7년차가 되기까지 우리 부부가 겪었던 일화들이 참으로 많다.

 

시골로 이사를 온 첫해, 자급자족을 하겠다며 텃밭에 심었던 토마토와 오이, 가지의 양을 가늠할 수 없어 난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서너 포기씩만 심어도 먹고 남을 텐데 종류별로 한 이랑씩이나 심었다. 오이나 가지가 한창 달리기 시작하니 감당 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지인들한테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몇 번씩 나누어 주기도 했다. 그런데 얻어먹는 사람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 있겠다 싶어 나눔도 그만두었다. 지금 같았으면 농산물공판장에 내다 팔기라도 했을 텐데 초보시절이라 그런 소견머리도 생각나지 않아 나중에는 구덩이를 파고 묻기까지 했다.

 

농사짓는 방법도 몰라서 실패를 많이 하면서 터득했다. 비닐을 씌워놓고 감자를 심어야 하는데, 감자를 먼저 심고 나서 흰색 비닐도 아니고 검은 비닐을 씌워 다시 걷어내기도 했다. 무조건 많이 넣으면 좋은 줄 알고 고구마 심을 밭에 퇴비와 비료를 많이 넣어 무만큼 굵은 고구마를 캔 적도 있었다. 고구마는 굵은 것보다 마촘한 사이즈가 상품가치가 더 있다는 것을 그 때 처음으로 알았다. 고추를 심어놓고 줄을 맬 줄 몰라 쩔쩔매던 때도 있었고, 마와 생강 농사를 배우기 위해 이웃 농가에 일을 해주며 배웠던 날들도 있었다. 좌충우돌하며 배운 일들이 더해져서 지금은 오천 평이나 되는 땅을 거뜬하게 일구고 있다.

밭을 일구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기계가 경운기와 관리기다. 경운기로는 밭을 갈거나 두루 수확기를 달고 감자와 고구마를 캘 때 사용하고 관리기는 주로 이랑을 만들 때 사용한다. 처음 접하는 낯선 기계를 사용할 줄 몰라 고장도 자주내고 처박기도 많이 했다. 이랑이라고 타 놓은 것이 구불구불해서 이웃사람들에게 남사스러웠는데 지금은 자로 잰 듯이 똑바르게 잘도 탄다.

 

강낭콩 농사도 처음이라 실패를 했을 것이다. 공부도 농사도, 이 세상 모든 일들도 실패하지 않고 성공할 수는 없을 터. 올해보다는 내년이 낫고, 내년보다는 후년이 더 나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리라.

 

예주룩 따놓은 풋양대 속에서 통통하게 여문 꼬투리를 골라, 오늘 저녁에는 남편이 좋아하는 양대밥을 지어 볼이 미어지도록 먹어야겠다.()

 

 

-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지 2017년 7.8월호(통권 167호)

- 김필녀시인의 농장일기

 

 

 

출처 : 마 캐는 시인, 김필녀 시인의 아정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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