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오지 중의 오지로 알려진 대곡리 찾아가는 길 청송 가는 길로 접어들어 20여분을 자동차로 달려 용계은행나무 가는 안내판을 막 지나자 오른쪽에 대곡리 4킬로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맞은편으로 가라는 화살표를 따라 좌회전을 하자 바로 산길이 시작되었다. |
![]() 고향의 옛 학교에 기와집 짓고 사는 시인 2003년 가을에 집을 완공해서 대구에서 이사를 했으니 만 5년이 다 되어간다고 하셨다. 집으로 들어가는 현관에는 ‘눌운세訥雲世’라는 현판이 걸려있었다. 어눌하고 더딘 걸음을 걷고자 하는 시인의 철학이 잘 담겨진 집이었다. 안내되어 들어간 서재에는 시인의 모든 것들이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잘 정리가 되어 있었다. 시인의 시가 실린 책이 한 쪽 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족사진, 직장생활을 하면서 찍은 사진, 문인활동을 하면서 찍은 중요한 사진들을 실크 스크린을 해서 차롬하게 걸어놓았다. 또 한쪽 면 중앙에는 목탁과 염주가 놓여있고, 구형타자기와 전자타자기가 놓여 있었다. 나머지 한 쪽 면은 넓은 통유리로 바깥이 훤히 내다보이게 해 놓았다. 나도 김연대 시인의 나이쯤 되면 이런 서재 하나쯤은 가질 수 있을까, 은근히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꿈을 이루기 위한 세 번의 가출 고향을 떠날 때는, 농사일이 막막해 도시로 떠나곤 했던 젊은 혈기가 있었다. |
![]() 사무기기의 개척자로 자수성가 세 번의 가출을 하면서 미군부대, 공장노동자, 학원 강사, 판매회사세일즈맨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1975년부터 사무기기 가게를 운영하면서 희망의 빛이 서서히 보이는 것 같았다. 그 이후로 20여 년간 OA정보통신업계에 몸을 담으면서 정신없이 일했고 열정을 쏟았다. 그는 쉽사리 ‘성공’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짐작컨대 세인들이 말하는 성공이라는 단어가 꼭 들어가야 할 대화인데도 그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싶은지, 조심스러워했다. 어느 정도 회사가 궤도에 오르고 돈도 벌만큼 벌었다는 생각이 들자 욕심을 버리기로 마음먹고 50대에 접어든 1992년, 막내 동생에게 사업을 물려주고 은퇴를 했다. 바로 밑의 동생도 사무기기 계열회사를 차려 독립을 시켰다. 보통 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결단을 내린 것이다. 대부분의 기업가들은 성공을 하게 되면 욕심이 생겨 문어발식으로 회사를 늘여나갈 계획을 할텐데 말이다. |
![]() 쉰이 다 되어 등단을 한 늦깎이 시인 “안동은 내 고향인데 이곳에서 문학 활동을 하게 되면 대충해서도 안 되고 열심히 참여해야 하는데 이제는 나이도 있고, 건강도 좋지 않아서 망설여지는 게 사실입니다.” 첫 시집 「꿈의 가출」이 1993년에 출간되면서 1996년 두 번째 시집 「꿈의 해후」가 출간되었고, 세 번째 시집 「꿈의 회향」이 2002년에 출간되었다. 공교롭게도 시집 제목에 ‘꿈’이라는 단어가 다 들어가 있다. 어머니는 내 마음의 영원한 스승 마당가에 심은 호박넝쿨이 때로 기운이 조금 나시면 모두가 배고프던 시절에도 호박헛꽃 꺾어 밥 위에 찌던 기진한 어머니의 허한 하루를 |
![]() 삶을 고향에서 조용히 정리하고 싶습니다. 김연대 시인은 독실한 불교 신자다. 어머니께서 불심이 깊어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불교와 인연이 깊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집도 사찰처럼 지어졌고 마당 한 쪽에 탑도 세워져 있다. 탑을 세울 때 스님을 모시고 봉안법회도 열었다. 탑 안에는 금강경, 반야심경, 부모은중경, 육필시 40편이 봉안되어 있다. 그가 가꾸는 300평 마당 텃밭에는 온갖 푸성귀, 과일나무, 꽃들이 심겨져 있었다. 쌀만 빼고 다 자급자족이 되니 모자람이 없다. 특히 더덕밭이 탐이 나 그 앞에 서성이니 시인이 껄껄 웃으며 말한다. 눌운세 시인, 세상을 향한 어눌하고 더딘 걸음 |
통권116호 - 인물탐방 |
'김필녀의 삶과 문학 > 김필녀자작글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봉숭아 물들이기 (0) | 2008.08.09 |
---|---|
노을 (0) | 2008.07.12 |
밤꽃 이야기 (0) | 2008.06.26 |
능소화, 아름다운 이별 (0) | 2008.06.23 |
그렇게 나는 너를 사랑하고 싶다 (0) | 2008.06.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