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인 추천시 제 5편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시인은 릴케와 꽃과 바다와 이중섭과 처용을 좋아했다. 시에서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의미의 두께를 벗겨내려는 '무의미 시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교과서를 비롯해 여느 시 모음집에서도 빠지지 않는 시가 '꽃'이며 사람들은 그를 '꽃의 시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1952년에 발표된 '꽃'을 처음 읽은 건 사춘기의 꽃무늬 책받침에서였다. '그'가 '너'로 되기, '나'와 '너'로 관계 맺기, 서로에게 '무엇'이 되기, 그것이 곧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이구나 했다.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것이구나 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게 존재의 의미를 인식하는 것이며, 이름이야말로 인식의 근본 조건이라는 걸 알게 된 건 대학에 와서였다. 존재하는 것들에 꼭 맞는 이름을 붙여주는 행위가 시 쓰기에 다름 아니라는 것도.

백일 내내 핀다는 백일홍은 예외로 치자. 천 년에 한 번 핀다는 우담바라의 꽃도 논외로 치자. 꽃이 피어 있는 날을 5일쯤이라 치면, 꽃나무에게 꽃인 시간은 365일 중 고작 5일인 셈. 인간의 평균 수명을 70년으로 치면, 우리 생에서 꽃핀 기간은 단 1년? 꽃은 인생이 아름답되 짧고, 고독하기에 연대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면, 서로에게 꽃으로 피면, 서로를 껴안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늦게 부르는 이름도 있고 빨리 부르는 이름도 있다. 내 꽃임에도 내가 부르기 전에 불려지기도 하고, 네 꽃임에도 기어코 네가 부르지 않기도 한다.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부르는 것의 운명적 호명(呼名)이여! '하나의 몸짓'에서,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는 것의 신비로움이여!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꽃은 나를 보는 너의 눈부처 속 꽃이었으나, 내가 본 가장 무서운 꽃은 나를 등진 너의 눈부처 속 꽃이었다.

세계일화(世界一花)랬거니,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세계는 한 꽃이다. 만화방창(萬化方暢)이랬거니,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세계는 꽃 천지다. 꽃이 피기 전의 정적, 이제 곧 새로운 꽃이 필 것이다. 불러라, 꽃!

[정끝별]

출처 : 독서논술지도사 김필녀서재
글쓴이 : 김필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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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인 추천시 제 4편 

 

 

 

즐거운 편지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일러스트=잠산

황동규 시인은 올해로 등단 50주년을 맞는다. 반 세기 동안이나 그는 우리말을 정갈하게 빚었고 우리말의 숨결을 세세하게 보살펴 고아(高雅)하게 했다. 놀랍게도 ‘즐거운 편지’는 황동규 시인이 1958년 ‘현대문학’에 발표한 그의 데뷔작이다. 영화 ‘기쁜 우리 젊은 날’과 ‘편지’ 등에서 낭송되어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이 시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의 원 제목도 ‘즐거운 편지’였다고 한다. 이제 이 시는 한국인의 애송시가 되었다. 만남과 이별의 회전 속도가 이처럼 빠른 시대에 이 시는 왜 여전히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가. 왜 여전히 막막하게 하는가. 헤어져 돌아가던 옛사랑의 뒷모습을 보게 하는가.

하늘이 먹먹하게 어두워지고 주먹눈이 막 내리는 날이면 어디 먼 산골이나 바닷가 민박집에라도 가고 싶어진다. 작은 넝쿨에 말라붙는 붉은 열매 같은 눈빛을 하고서 눈이 내리는 그 시간을 살고 싶어진다. 눈이 그치면 순백의 설원과 설원 위를 유행(遊行)하는 바람의 노래를 듣고 싶어진다. 그리고 멀리 두고 온 사람을 ‘가까스로’ 떠올릴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적막한 시간에 나를 선택하지 않은 사랑을 떠올리는 일은 아주 사소한 일이 될 것이다.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이 될 것이다. 너무 사소하여서 손을 놓고 아무 일도 하지 못할 것이다. 너무 사소하여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그렇게 이 세상에서 잊혀진 듯 살 것이다. 폭설에 갇힌 순한 산짐승처럼 우는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그대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건넨 이별의 말은 나의 가슴에서 깨끗하게 씻어낼 것이다. 겨울 하늘에 뜬 달이 천강(千江)을 비추어도 그대는 나를 생각하지 말라. 그대가 나의 사랑을 다시 받아 안는 날이 와도 내가 아직 저 산골짜기 깊은 산막에서 그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하는 그런 아주 짧은 후일에도 그대는 나를 생각하지 말라.

[문태준 시인] 

입력 : 2008.01.04 00:55
출처 : 독서논술지도사 김필녀서재
글쓴이 : 김필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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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인 추천시 제 3편

 

 

 

 

 

남해 금산

 

이성복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 일러스트=잠산


돌 속에 묻힌 한 여자의 사랑을 따라 한 남자가 돌 속에 들어간다면, 그들은 돌의 연인이고 돌의 사랑에 빠졌음에 틀림없다. 그 돌 속에는 불이 있고, 목마름이 있고, 소금이 있고, 무심(無心)이 있고, 산 같은 숙명이 있었을 터. 팔다리가 하나로 엉킨 그 돌의 형상을 ‘사랑의 끔찍한 포옹’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런데, 그런데 왜, 한 여자는 울면서 돌에서 떠났을까? 어쩌자고 해와 달은 그 여자를 끌어주었을까?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한 남자를 남긴 채. 돌 속에 홀로 남은 그 남자는 푸른 바닷물 속에 잠기면서 부풀어간다. 물의 깊이로 헤아릴 길 없는 사랑의 부재를 채우며. 그러니 그 돌은 불타는 상상을 불러일으킬밖에. 그러니 그 돌은 매혹일 수밖에.

남해 금산, 돌의 사랑은 영원이다. 시간은 대과거에서 과거로 다시 현재로 넘나들고, 공간은 물과 돌의 안팎을 자유롭게 드나든다. 과거도 아니고 현재도 아닌, 안(시작)도 없고 밖(끝)도 없는 그곳에서 시인은 도달할 수 없는 사랑의 심연으로 잠기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돌이 되고 바위가 되는지 남해의 금산(錦山)에 가보면 안다. 남해 금산의 하늘가 상사암(相思巖)에 가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불길 속에서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 채 돌이 되는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돌의 고통 속에서도 요지부동으로 서로를 마주한 채 뿌리를 박고 있는지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을 들여다보면 안다.

모든 사랑은 위험하지만 사랑이 없는 삶은 더욱 치명적이라는 것을, 어긋난 사랑의 피난처이자 보루가 문득 돌이 되어 가라앉기도 한다는 것을, 어쩌면 한 번은 있을 법한 사랑의 깊은 슬픔이 저토록 아름답기도 하다는 것을 나는 ‘남해 금산’에서 배웠다. 모든 문을 다 걸어 잠근, 남해 금산 돌의 풍경 속. 80년대 사랑법이었다.

80년대 시단에 파란을 일으킨 이성복의 첫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1980)는, 기존의 시 문법을 파괴하는 낯선 비유와 의식의 초현실적 해체를 통해 시대적 상처를 새롭게 조명했다. ‘남해 금산’은 그러한 실험적 언어가 보다 정제된 서정의 언어로 변화하는 기점에 놓인 시다. [정끝별 시인]


정끝별 명지대 국문과 교수. 1988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칼레의 바다’ 등 7편이 당선되며 등단했다.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 ‘삼천갑자 복사빛’ 등의 시집이 있다.

입력 : 2008.01.03 00:14 / 수정 : 2008.01.10 08:38
출처 : 독서논술지도사 김필녀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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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인 추천시 제 2편

 

 

'풀'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전집 1' (민음사)

▲ 일러스트=권신아

풀은 이 세상에서 제일로 흔하다. 풀은 자꾸자꾸 돋는다. 비를 만나면 비를 받고 눈보라가 치면 눈보라를 받는다. 한 계절에는 푸르고 무성하지만, 한 계절에는 늙고 병든 어머니처럼 야위어서 마른 빛깔 일색이다. 그러나 이 곤란 속에서도 풀은 비명이 없다. 풀은 바깥에서 오는 것들을 긍정한다.

풀은 낮은 곳에서 유독 겸손하다. 풀은 둥글게 휘고 둥글게 일어선다. 꺾임이 없는 ‘둥근 곡선’의 자세가 풀의 미덕이다. 느리지만 처음 있던 곳으로 되돌리는 이 불굴의 힘을 풀은 갖고 있다. 풀은 이변을 꿈꾸지 않는다. 제 몸이 무너지면 그 무너진 자리에서 스스로 제 몸을 일으켜 세운다. 풀은 솔직한 육필이다. 풀은 ‘발밑까지’ 누워도 발밑에서 일어선다. 바닥까지 내려가 보았으므로 풀은 이제 벼랑을 모른다.

새날이 왔다. 새날을 받고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은 어제에 있다. 어제의 슬픔과 어제의 이별과 어제의 질병과 어제의 두려움 속에 있다. 그러나 어제의 곤란은 어제의 곤란으로 끝나야 한다. 열등은 어제의 열등으로 끝나야 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내심에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다. 이것을 잘 아는 사람은 만 명의 적이 와도 무서움이 없으며 물러섬이 없을 것이다. 자존(自尊)과 자립(自立)의 에너지가 우리의 자성(自性)이다.

나아지고 있다는 믿음, 일어서고 있다는 믿음, 넓고 큰 세상으로 향해 가고 있다는 믿음, 당신을 더 사랑하게 되리라는 믿음, 우리는 이 다짐으로 새날을 살아야 한다. 눈사태를 뚫고 산정(山頂)을 찾아가는 산악인처럼.

타계한 해에 발표된 ‘풀’은 김수영(1921~1968)의 마지막 작품이고, 우리 시대 100명의 시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시이기도 하다. 올해로 40주기를 맞은 김수영은 전위적 모더니즘으로, 4·19 혁명 이후에는 참여시(詩)로 한국 현대시의 지평을 넓혔다. 그의 시는 사람들 가슴 속에 눕고 울고 일어서며 푸르게 살아 있다.

문태준·시인


문태준 시인은 1994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했으며 동서문학상·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등이 있다.

 
출처 : 독서논술지도사 김필녀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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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인의 추천시 제 1편

 

 

 

▲ 일러스트= 잠산

 

쥐띠 해가 밝았다. 새로운 정부를 탄생시킬 새해가 밝았다. 현대시가 출발한 지 100년이 되는 해가 밝았다. 대통령 당선자는 근심과 탄식의 소리가 멈춘 ‘생생지락(生生之樂)’의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다. 어둠으로 점철된 현대사 속에서 우리 시는 시대의 고통을 살라먹고 ‘청산(靑山)의 해’를 예감하는 첨병의 정신을 놓지 않았다.

‘해’ 하면 떠오르는 시, 그것도 ‘새해’ 하면 떠오르는 시, 현대시에서 드물게 희망으로 충만한 시, 중학교 1학년 교과서에서 읽게 되는 시가 바로 박두진의 ‘해’이다. 1946년에 발표된 이 ‘해’가, 해방을 염원하던 해든 해방의 기쁨을 담은 해든, 솟지 않는 해를 향한 촉구든 솟고 있는 해를 향한 경이든 무슨 상관이랴. 그 해가 여전히, 지금-여기에서, 이글이글 솟구치고 훨훨훨 분방하고 워어이 워어이 불러모으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막 솟는 해처럼, 말의 되풀이는 힘차고 뜻의 개진은 꿋꿋하다. 언어가 어떻게 되풀이되고, 그 되풀이가 어떻게 노래가 되고 주술에 가까워지는가를 보여주는 시다.

‘씻고’ ‘살라먹는’, 그 세례와 정화에 의해 날마다 생생(生生)하게 새로 뜨는 해. 그 해 아래 시를 살(生)고, 사는(生) 시를 꿈꿔 보는 새벽이다. 삶 속에서 이글이글 솟아나는 예의 그 생생지락(生生之樂)과, 시 속에서 훨훨훨 깃을 치는 시시지락(詩詩之樂)을 꿈꿔 보는 아침이다. 미움과 갈등의 시간을 버리고 강자와 약자가 워어이 워어이 더불어 상생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꿔 보는 새해다.

우리는 이제 달밤에 벌어진 상처, 눈물 같은 골짜기에서 일어난 죄악을 (불)살라 태우고 ‘앳된 얼굴’로 다시 태어날 것이니, 새해야 부디 ‘늬’도 그렇게 솟아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세상의 모든 희망아, ‘늬’도 꼭 그렇게 고운 해처럼 오라. 삼백예순 날의 삶아, ‘앳되고 고운 날’들아, ‘늬’들도 꼭 그렇게만 좋아라. 백년의 백년 내내 낙희낙희(樂喜樂喜)하고 럭키럭키(lucky lucky)하게!
<정끝별시인>
 
 
출처 : 독서논술지도사 김필녀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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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련 김필녀 가슴속 담아 둔 그리움 사무치면 저렇듯 피어나는가 느닷없이 솟구치는 속내 감추고 꼿꼿이 세워 보는 자존심 때로 흔들림 없을까만 마음 다잡아 초연한 자태 아름다운 것이 서러움이라는 것을 아는 듯 기웃대는 햇살에 돌아앉지만 수척해진 얼굴 위로 봄빛이 진다 08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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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생일날 남편한테서 작은 영산홍 화분을 선물받았다.

안동장날 일이 있어 신시장에 갔다가 길거리에서 샀다고 하면서

크고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잘 키우면 예쁠거라는 말과 함께 건네받은 후

볕이 좋은 날은 해바라기를 시키면서 시간이 날때마다 정성을 쏟았는데

우리집에 온 지 20여일만에 드디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영산홍이 꽃을 피우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나무가 꽃을 피우는 과정이 너무도 힘들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마치 출산을 앞둔 어머니의 산고처럼 

꽃망울을 싸고 있던 겉껍질을 한 겹 한 겹 벗겨내며 

기나긴 진통끝에 마침내 꽃을 피우는 영산홍을 바라보며

그냥 있을 수 없어 글을 한 편 남기기로 하고 지금 퇴고 중에 있다.

 

 

 

 

 

 





산수유와 산동백을 구별할 줄 아시나요?
<산수유꽃과 산동백꽃> <산동백꽃(상)과 산수유꽃(하)>
☞[산수유(山茱萸)] 층층나무과의 낙엽활엽소교목. 크기는 수고 7m, 직경 30-50cm 정도. 꽃은 양성으로서 3-4월에 잎보다 먼저 피며, 지름 4-5mm이고 황색이며 산형화서에 20-30개의 꽃이 달린다. 총포편은 4개이고 황색이며 길이 6-8mm로서, 타원형 예두이고 소화경은 길이 6-10mm이다. 꽃받침잎은 4개이며 꽃받침통에 털이 있고, 꽃잎은 피침상 삼각형으로서 길이 2mm이며 암술대는 길이 1.5mm이다. 높이 7m이며 수피는 벗겨지고 연한 갈색이다. 소지는 처음에 짧은 털이 있으나 떨어지며 분녹색이 돌고 겉껍질은 벗겨진다. 잎은 대생하며 난형, 타원형 또는 난상 피침형이고, 길이 4~12cm, 나비 2.5-6cm로서 긴 점첨두이며 넓은 예저이고, 표면은 녹색이며 복모가 약간 있다. 뒷면은 연한 녹색이거나 흰빛이 돌며 표면보다 털이 많고, 맥액(脈腋)에 갈색 밀모(密毛)가 나며 톱니가 없다. 측맥은 4~7쌍이며 엽병은 길이 5-15mm이고 털이 있다. 가을에 열매가 선홍색으로 익으면 매우 아름답다. 열매는 길이 1.5-2cm로서 8-10월에 익는 타원형 장과로서 광택이 있다. 종자는 타원형이고 늑조(肋條)가 있다. 원산지는 한국이며, 중국, 일본, 오키나와에도 분포한다. 수직적으로 표고 100m, 수평적으로 전남, 전북, 충남, 충북, 경기도에서 재배한다. ☞[산동백] 산동백은 생강나무의 별칭. 녹나무과의 원개형 낙엽활엽 관목. 높이 3m 내외. 꽃은 이가화이고 3월에 잎보다 먼저 피고 황색이며, 화경이 없는 산형화서에 많이 달린다. 소화경은 짧으며 털이 있다. 꽃받침잎은 깊게 6개로 갈라진다. 수술은 9개, 암술은 1개인데 수꽃은 암술이 퇴화하여 있고, 암꽃은 수술이 퇴화하여 있다. 잎은 호생하며 길이 5-15cm, 나비 4-13cm로서, 난형 또는 난상 원형이며 둔두이며 심장저 또는 원저이다. 윗부분이 3-5개로 갈라지지만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엽병은 길이 1-2cm로 털이 있다. 잎뒷면 맥에 털이 있으며 엽병은 길이 1-2㎝이며 털이 있다. 줄기는 높이가 3m에 달하며 수피는 흑회색이고 소지는 황록색이다. 소지와 동아에 털이 없다. 길이 1㎝의 과경이 있다. 굵은 뿌리가 몇 개 있다. 열매는 장과로서 둥글고 지름 7-8㎜이며 소과경은 길이 1cm이고, 녹색에서 황색 또는 홍색으로 변하며 흑색으로 9-10월에 익는다. 원산지는 한국이며, 일본과 중국, 만주에도 분포한다. 전국의 표고 100-1,600m까지 자생하며, 특히 경기도의 사능 부근에는 식물상의 약 80%가 생강나무로 이루어져 있다. ☞[산수유와 산동백의 구별 방법] 1. 가지끝에서 피면 산수유꽃, 줄기에 붙어서 피면 생강나무꽃이다. 2. 산수유는 한 송이씩 따로 피고 산동백은 여러 송이가 붙어서 핀다. 3. 산수유는 줄기 표피가 거칠고 벗겨지지만, 생강나무의 줄기 표피는 매끈하다. 4. 산수유 잎은 계란형이고, 생강나무 잎은 심장 모양이다. 5. 생강나무는 암꽃이 달리는 암나무와 수꽃이 달리는 수나무가 따로 있다.
<산수유와 산동백> 세월이 가면 / 임태경 術藝村印
출처 : yesulchon
글쓴이 : 촌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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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에게 묻는다 김필녀 마른 가슴에 흙먼지 풀풀 날리고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그리움 목울대를 타고 울컥 올라오면 나를 찾아온다고 약속했었지 마을 어귀마다 산수유 노란 꽃등 달고 물오른 가지마다 선머슴애 얼굴가득 돋아난 여드름처럼 꽃눈 툭툭 불거지면 못 견디게 그리워 한달음에 온다고 했었지 머리칼을 적시고 온 몸 흠뻑 젖어 얇은 봄옷 위로 따스한 체온 스멀스멀 배어나면 감미로운 입김 나누며 사랑하자 맹세했었지 너와 나 한 몸으로 흐르고 흐르다 푸른 수액이 되어 어느 날엔가 빨간 꽃눈 톡톡 터뜨려 새 씨앗도 만들자 다짐했었지 080323 / 봄비가 내리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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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안 만휴정에서 / 080320
격월간으로 발간되는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지'에 실을 기사를
취재하러 길안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만휴정에 잠시 들렸습니다.
봄이 오고 있는 만휴정은 너무도 고요하고 한적하여 
겨우내 무거웠던 마음들을 훌훌 털어버리게 했습니다.
마음이 우울하고 외로울 때 한번 쯤 다녀오면 좋을 듯 합니다.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에 있는 만휴정(晩休亭)은 
인근 묵계서원에 배향된 보백당 김계행(1431~1517)이 
만년을 보내려고 지은 정자다.
만휴정은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홑처마 팔작집이다. 
앞은 고스란히 개방하여 툇마루로 구성했고 뒤에는 양쪽에 
온돌방을 들였다. 누마루에 앉으면 담장 너머로 계곡과 시냇물, 
바위와 소나무가 하나로 어우러진 풍경이 무심히 다가온다. 
16세기 초에 지어진 이 정자는 여러 차례 수리로 변형되었고 
조선 후기의 양식을 보이는 부분도 있다고 한다. 
보백당 김계행은 퇴계 이황, 서애 유성룡보다 한 세대 앞선 인물이다. 
마흔 아홉, 뒤늦게 대과에 급제, 쉰이 넘어서 본격적인 벼슬살이를 시작했다. 
성균관 대사성, 대사간, 이조참의 등을 역임했으나 부조리한 정치현실을 
비판하는 상소를 끊임없이 올려 출사와 퇴사를 거듭해야 했다. 
무오사화(1498) 이후, 그는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안동 풍산(豊山)에 은거하였다. 
여든 일곱에 운명하면서 자손들에게 보백당은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조선 초기 청백리로 뽑힐 만한 기개의 언명(言明)이다.

오가무보물(吾家無寶物) 내 집에 보물은 없다. 
보물유청백(寶物惟淸白) 보물이 있다면 오직 맑고 깨끗함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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