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에게 묻는다 김필녀 마른 가슴에 흙먼지 풀풀 날리고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그리움 목울대를 타고 울컥 올라오면 나를 찾아온다고 약속했었지 마을 어귀마다 산수유 노란 꽃등 달고 물오른 가지마다 선머슴애 얼굴가득 돋아난 여드름처럼 꽃눈 툭툭 불거지면 못 견디게 그리워 한달음에 온다고 했었지 머리칼을 적시고 온 몸 흠뻑 젖어 얇은 봄옷 위로 따스한 체온 스멀스멀 배어나면 감미로운 입김 나누며 사랑하자 맹세했었지 너와 나 한 몸으로 흐르고 흐르다 푸른 수액이 되어 어느 날엔가 빨간 꽃눈 톡톡 터뜨려 새 씨앗도 만들자 다짐했었지 080323 / 봄비가 내리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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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 내리는 눈 김필녀 겨우내 감질나게 내리던 눈은 경칩을 하루 앞두고서 수액을 빨아올리며 봄을 채비하고 있던 나뭇가지 위에 함박눈으로 내렸다 순백의 아름다움 앞에서 내 무딘 언어의 한계는 첫사랑 고백처럼 입가에 맴돌기만 할 뿐 한 마디 표현도 하지 못한 채 가슴앓이만 하다가 그냥 보내고 말았다 행복한 순간은 빨리 지나간다고 했던가 사랑하던 사람은 가고 없어도 사랑하던 기억은 또렷이 남아 가슴 한켠에 아름다운 무늬를 새긴다 3월에 내리는 눈은 새싹들이 움트고 만물이 소생하는 생명수가 되어 마른땅을 적시듯이 마음속으만 간직하고 있었던 그 사람의 순백의 편지였는지도 모른다 080304 / 춘설이 내리던 날 ♬ Yuhki Kuramoto / Lake Louis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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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분옥 할머니의 깡통장학회(글/김필녀-안동주부문학회원)

    2월은 겨울과 봄이 교차하는 달이다. 언 땅 저 밑에서는 겨우내 품고 있던 봄이 태동을 하고, 살얼음 밑을 흐르는 시냇물도 한결 맑은 소리로 흐른다. 그 소리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냇가의 버들개지도 융단 같은 털 속에서 실눈을 뜬 채 한결 부드러워진 바람을 맞는다.
    안동은 물안개로 봄이 시작되는 듯하다. 아침 일찍 낙동강변에 나가 보면 강 전체가 물안개 천지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환상적인 물안개를 보노라면 그 속에 퐁당 뛰어들고픈 마음이 든다. 겨우내 참고 기다렸던 강물도 이제는 그리움이 한계에 달했는지 하얀 입김을 뿜어 올리며 온 몸으로 사랑을 고백하고 있다. 머지않아 안동을 휘돌아 흐르는 강가에는 여린 새싹이 움틀 것이고, 노란 미소를 띤 개나리가 웃으며 손짓을 할 것이다.
    안동토박이면서 20년 동안 남들에게 알리지 않고 봉사활동을 실천하고 계신 정분옥(71)할머니를 취재하기 위해서 아침 일찍 서둘러 집을 나섰다. 입춘을 며칠 앞두었지만 바람은 여전히 찼다. 1년 전에 취재를 하려고 계획을 세웠으나 남모르게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하시면서 극구 사양을 했던 할머니는 끈덕진 설득에 ‘내가 두 손 들었소’ 하시며 집 주소를 가르쳐 주셨다.


    남을 돕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세상에는 불우이웃돕기다 뭐다 하면서 성금을 내고는 이름을 대문짝만하게 내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런 사람들이 행하는 선행은 진정한 선행이라고 할 수 없다. 자기가 한 선행을 아무도 모르게 몇 십 년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존경받아 마땅하다. 그런 분이 바로 깡통장학회 정분옥(71세) 회장이다.
    깡통장학회 정분옥 회장은 안동의 명동이라고 할 수 있는 남문동에 살고 있는 안동토박이다. 차 없는 거리 상가 3층에 살고 계셨는데, 3층까지 올라가는 계단 곳곳에는 오래 쓴 흔적이 베인 나무벤치며, 낡은 의자 등 근검절약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것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부유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여건을 모두 갖추고 있음에도 근검절약하는 생활에 몸에 베인 듯했다.


    집안으로 들어갔을 때 정분옥 할머니는 다소 감기 기운이 있는 모습으로 반겨주셨다. 약속을 미뤄도 괜찮다고 말을 건네자 손사래를 치며 반겨주신다.
    “바쁜 분들 스케줄에 맞추어야지 다음에 잡으면 모든 스케줄에 차질이 있을 것 아녜요.”
    옛날에는 약국을 하셨고, 남문동에 상가를 가지고 있기에 경제적인 여건으로 봐서는 집안을 좀 화려하고 여유롭게 꾸며놓고 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집안은 아주 검소했다. 웬만한 집이면 다 있는 평면 TV도 없었다. 그리고 인터뷰를 하는 장소인 거실이 어두운데도 전기도 켜지 않으셨다. 정갈하게 차린 다과상 앞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인터뷰를 한다고 하니 괜히 부끄럽다며 소성회 회원이자 깡통장학회 회원이며 평소에도 절친해 자주 만난다는 선배 한 분을 부르셨다며 인사를 시켜주셨다.




    소성회(작은별 모임)에서 봉사에 눈 떴죠.
    깡통장학회는 1990년에 시작한 소성회(작은별)라는 작은 친목단체를 전신으로 하고 있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남이 모르게 작은 봉사활동을 하자는 취지로 안동에 살고 있는 주부 47명으로 시작을 했다고 한다.


    소성회가 주로 하는 일은 남들이 잘 돌보지 않는 장애인 돕기, 독거노인 돕기 등 그 당시로서는 사회단체에서조차 관심을 갖지 않은 곳들을 돌보았다고 한다. 보통 주부들이 하는 친목회는 회비를 조금씩 내어서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철마다 여행을 하는 모임이 대부분인데 소성회 회원들은 작은 회비를 모아서 어려운 이웃들을 도왔다고 한다. 회원들은 회비 외에도 주로 집에서 쓰지 않고 묵혀 두고 있던 물건이나 명절이면 선물로 들어온 세숫비누, 빨래비누, 치약, 칫솔 등을 모아두었다가 모임을 가질 때마다 가방에 하나 가득 들고 와서 불우한 이웃들과 나누어 썼다고 했다.


    보통의 친목회가 그렇듯 처음에는 만나면 식당 음식 먹고 담소를 나누었는데, 문득 의미 있는 일을 하고픈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각자 집에서 번갈아 모이고 1,500원짜리 보리밥으로 식사를 하고 남는 돈으로 보람된 일을 해보자고 시작한 것이 이젠 그마저도 사치니 돕는데 선뜻 보태보자고 회비를 거두게 된 것이다.
    봉사활동을  하고 난 후에는 회원들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었기에 소성회가 오래도록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흔한 계모임이 아니다보니 빠져나갈 사람은 진즉에 빠져나가 회원의 움직임도 적어 일단 들어오면 열심히 활동을 하게 된다고 한다. 처음 봉사활동을 갔을 때 보통 정신으로는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는 정분옥 할머니.


    “내가 아직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마음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옆에서 선배님들이 깍듯이 봉사활동하는 모습 보면서 이건 감상으로 하는 일이 절대 아니라고 느꼈거든요.”
    그때부터였다.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고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구체적인 행동을 하게 된 것은.


    시내 차 없는 거리에 새벽마다 쌓이는 깡통
    봉사활동으로 똘똘 뭉친 소성회 회원들 중 일부가 1998년부터 환경보호도 하고 좋은 일도 하자는 취지에서 길가나 쓰레기통에 버려진 빈 깡통을 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애국사랑 깡통장학회’로 이름이 붙여졌다.


    정분옥 할머니가 깡통을 모으게 된 계기는  아들이 있는 미국에 다녀오고서부터이다. 아들의 차 트렁크에 가득 담긴 깡통을 보고 의아해하자 깡통이 땅에 그대로 묻혀 썩는다면 50년 이상 방치되어 환경이 훼손될 거라는 얘기를 듣고 난 이후부터이다. 환경보호를 위해 버려진 깡통을 줍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깡통장학회 회원들은 ‘내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하여 하루 30분 정도 노력하자’는 취지로 거의 매일 아침 6시부터 9시 사이 시내 일원에서 쓰레기를 주우며 환경을 깨끗이 하고, 1개에 3원하는 버려진 깡통을 모아 얻어진 수익금으로 불우한 이웃을 도왔다. 98년 말에 90만 8천원으로 수재의연금과 무료급식소 부식비와 청소년의 집에 따스한 이불을 보냈고, 1999년에는 2백 8십 9만원을 모아 시내 무료급식소 ‘요셉의 집’과 청소년의 집 ‘프란체스코’에 쌀 17가마를 보냈으며, 2000년에도 쌀 14가마를 보냈다. 또한 2001년에는 경기도 산본 고등학교에 다니는 최지혜 양이 학교에서 쓰레기 재활용을 잘하여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격려금 10만원을 보내는 등 훈훈한 인정의 꽃을 피웠다.


    “깡통장학회 회원들과 가족들이 참 많은 수고를 했지요. 빈 깡통을 모으는 일보다 그 안에 든 쓰레기를 꺼내는 일이 더 힘든 일이었어요.” 음료수를 마시고 깡통을 버릴 때 담뱃재나 쓰레기를 넣지 말고 그냥 버리면 재활용하기가 쉽다고 당부의 말씀도 함께 하셨다. 깡통장학회 회원들은 외출을 할 때는 길가에 버려진 깡통을 줍기 위해서 큰 가방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시간이 날 때는 쓰레기장 주변을 뒤져서 빈 깡통을 줍기도 했다.


    처음에는 살만한 분들이 왜 저러나 하면서 주변사람들한테 오해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좋은 일을 하겠다는 취지로 깡통을 모은다는 것을 알고는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도 빈 깡통을 모아 정분옥 할머니 집 마당에 갖다 놓곤 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남모르게 이웃을 돕자는 뜻있는 이웃들의 노고와 도움 덕에 깡통장학회를 꾸려왔는지도 모른다.




    깡통할머니의 모교사랑
    정분옥 할머니는 모아진 깡통을 고물상에 팔아 의미 있는 일을 시작하게 된 후 안동여고에 장학금을 기탁할 계획을 세웠다. 언제나 마음 한 켠에서 무언가 보탬이 되고픈 모교였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보다는 심성이 착하고 봉사심이 투철한 학생을 장학생 선발기준으로 삼았다고 한다. 장학금을 받은 학생은 휴일을 이용해서 정분옥 할머니와 함께 시설이나 각종 봉사활동을 함께하면서 이웃에 대한 사랑이나 봉사활동을 실천하게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고 한다. 장학생도 여름에 선발한다. 한 학기를 눈여겨 본 선생님과 주위의 평가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쌓이는 깡통에 가족의 불만도 많았을 터였다.


    “바깥 양반이 처음에는 싫은 내색을 했지요. 그런데 혼자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분들이랑 어울려 깡통을 모으니 헛기침 몇 번 하고 지나치더라구요. 나중에 장학금도 지급하고 좋은 일도 하는 모양을 보더니 대견했던 모양이에요. 수거하기 쉽도록 모르는 척 한 번씩 깡통을 밟아놓곤 지나가더라구요.”
    그렇게 열심이었지만 지금은 회원들 대부분이 고령이다 보니 건강이 좋지 않아서 깡통을 모으는 일은 쉬고 있다.
    “아무래도 관절에도 무리가 오고 예전 같지 않아요. 가족들의 만류도 있고 해서 작년에 깡통 모으는 일을 그만두었어요.”


    지금은 ‘정분옥 장학회’로 이름을 바꾸어 할머니의 쌈짓돈으로 기금을 마련해 모교인 안동여고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남편이 20년 넘게 약국을 경영할 때 약국에서 열심히 보조를 했다며 그 대가로 증여받은 땅이 있다고 귀띔을 해주셨다. 그 땅이 팔리면 안동여고에 장학금으로 1억 원을 기부하기로 약속을 했다. 지금은 매매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나오는 이자 수익금 명목으로 1년에 3명에게 백만원씩, 총 삼백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매매가 이루어지지 않아 걱정입니다. 장학금 기탁을 약속했으니 전액 기탁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제가 면목이 없어요. 얼른 매매가 성사되었으면 좋겠어요.”
    작은 일도 자주하게 되면 언젠가는 큰일도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살아온 정분옥 할머니. 자신의 이름을 내건 장학회 운영에 까지 이르렀으니 깡통장학회부터 정분옥 장학회까지 할머니의 한결같은 마음이 있음에 가능한 일이었다.




    옥련동산 감나무엔 핀 할머니의 모교사랑
    정분옥 할머니는 바쁜 시간을 쪼개어 봉사활동을 하고, 약국을 경영하면서 바쁘게 살다보니 동창회에도 제대로 참석을 못했다고 하셨다. 그러다보니 자연적으로 모교인 안동여고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하셨다. 그런데 요즘엔 모교인 안동여고의 옥련동산 가꾸기에 여념이 없으신 것 같았다. 몇 년 전에는 교정에 빨간 감이 주렁주렁 달리면 보기도 좋고, 학생들의 정서 순화에도 도움이 될 거라며 감나무 열그루를 심기도 했다. 그 이후로 시간이 날 때마다 나팔꽃, 사루비아, 국화를 심고 가꾸면서 심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매일 새벽에 운동 삼아 학교에 올라가서 물도 주고, 잡초도 뽑으면서 모교 사랑에 흠뻑 빠져서 지낸다.


    옛날 학교 다니실 때 꿈이 무엇이냐고 여쭈었더니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꿈 보다는 그저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공부하는 착한 학생이었지요. 우리 시대엔 또 대부분 그렇게 배우고 지내왔고요.”
    안동여고를 졸업 한 후에 대학도 갈 수 있을 정도로 형편은 괜찮았지만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그냥 집에서 조신하게 가사를 배우다가 결혼을 했다. 요즘 사람들 말로 참 고리타분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할머니의 생각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제가 모교에 장학금 기탁을 결심한 것도 가정에서 어머니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여고생들이 나중에 아이들을 낳고 아이들 교육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키우는 어머니가 되잖아요? 그런 아이들이 올바른 인성을 가지게 한다면 그 아이들도 좋은 어머니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소박한 생각을 하고 있어요.”




    깡통, 연탄, 생필품, 작은 나눔이 큰 행복
    정분옥 할머니는 어떻게 살면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위해 작은 도움을 실천하면서 살 수 있을까 하면서 늘 머릿속에는 봉사활동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분 같았다.
    장학회를 꾸려가는 일 외에도 안동의 차 없는 거리에 태극기 달기, 공중전화가 50원 하던 시절에는 50원짜리 동전을 전화기 안에 넣어두면서 작은 것에 기뻐할 분들을 머릿속에 그려보면서 행복해 하셨다고 했다. 작은 일이지만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일들을 참 많이 해 오신 분이셨다. 또 기름 값이 치솟는 요즘 연탄을 쓰는 사람도 퍽 늘었기에 ‘연탄장학회’라 이름 하여 연탄을 필요로 하는 곳에 연탄을 떼다 주었다. 연탄은  많은 물량을 소비하는 곳만 배달이 가능해 그마저도 구입하지 못해 쩔쩔매는 이들에게 도움을 준 것이다. 얼마 전부터는 수족이 불편하신 어른 내외가 사는 곳에 한 달에 한 번씩 생필품을 사 주신다고 하셨다. 박스 단위가 아닌, 주부로 살면서 터득한 지혜를 빌어서 꼭 필요한 것들을 꼼꼼하게 메모해서는 직접 마트에 들려서 산다. 불편한 분들이 작은 생필품을 사러 다니시는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해서 직접 배달까지 해 주신다고 하셨다.


    아들은 결혼해서 미국에서 살고 있고, 딸도 출가를 하고, 지금은 남편과 두 분이서 오붓하게 살고 있는 정분옥 할머니. 봉사활동을 하면서도 가정에 소홀하지 않기 위해서 평소보다 1시간을 먼저 일어나서 집안일을 다 한 후에 시작했을 정도다. 아내로서, 어머니로서도 어떻게 살았느냐고 물어보지 않아도 현모양처로 잘 살아오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역할에 따라 세상이 변합니다.”
    연령을 막론하고 부자 열풍이 불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노블리스 오불리제를 실천하고 있는 정분옥 할머니의 생각은 남다르다.
    “자기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 젊은 사람들이 열심히 사는 건 좋지만 선진국일수록 부자가 존경받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부자를 좋게 보지 않지요. 무조건 부를 축적한다고 부자가 되지는 않겠지요. 행복한 부자가 되려면 나눔의 기쁨을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을 다 키운 엄마의 입장이기에 그래서 더더욱 교육의 중요성과 어머니의 역할을 강조하는 정분옥 할머니. 그런 믿음으로 모교 언덕을 일주일에도 몇 번씩 오르내리고 있다.
    정분옥 할머니는 안동에서 어느 정도의 재력을 갖고 계신 분이다. 그러나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다며 남을 돕고 봉사활동을 하면 가장 행복하기 때문에 오래도록 몸소 실천을 하고 있다고 하셨다.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국민은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의 국민들이 아니라 가장 후진국인 방글라데시 국민들이라고 한다. 욕심은 끝이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며 살고, 작은 것이라도 이웃과 사회를 생각하며 더불어 살아간다면 그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안동>


     

    통권114호 - 인물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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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옹이 김필녀 그 한 번의 떨리던 만남이 그 한 번의 가슴 아프던 이별이 기나긴 세월을 버티게 했습니다 사랑인 줄 몰랐던 사랑은 이별인 줄 몰랐던 이별로 생살 찢는 아픔 겪어야 했지만 건너야 할 애증의 강 깊어 가 닿아야 할 그리움 있어 그대 안에 꽃보다 예쁜 무늬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 한 번의 그윽하던 눈빛이 그 한 번의 따스하던 감촉이 내 한 생生을 버티게 하고 있습니다 080217 * 옹이 : 나무의 몸에 박힌 가지의 그루터기 ♬ 그 대 / 이문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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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백꽃 앞에서 김필녀 매운 세월의 무게만큼 쌓인 눈 가지에서 털어 내며 잔설殘雪 아래 비로소 동백나무 제 하늘 이고 서듯 살아온 날들의 그믐밤 같은 상념 다 털어 낸 다음 미소 머금은 동백꽃 노란 꽃술처럼 나도 내 하늘 한 쪽 열고 싶다 080215 / 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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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몸 푼 하늘 
    느긋이 내려앉고
    칼 버린 바람 
    가지 끝을 어우를 때
    꽃샘추위에
    그리운 이 더욱 그립다
    새싹들 움트는 소리
    안개로 피어나고
    물 오른 나뭇가지
    봄비에 기지개 켤 때
    그리운 이 꿈결에
    아지랑이로 오신다
    060219 / 김필녀
    ♬ 그 날 / 김연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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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강
    김필녀
    매서운 바람 몰아칠 때마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겨울 강은 
    흔들리며 고립된다 
    그리운 얼굴도 잠시 잊고 
    껴안은 시간의 굴레도 벗고 
    절대 고독 속에 자신을 가둔다 
    새로운 꿈을 준비하며 
    잠에 드는 
    저 완전한 고립 
    08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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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둑눈
    김필녀
    강원도에는 대설주의보가 내리고 
    쉴 새 없이 내리는 폭설로 
    마을이 고립되었다는 보도를 비웃듯이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렸다
    폭설에 갇혀 한번쯤은
    통속적인 사랑에 빠져보고 싶은
    뭇사람들 환상을 외면할 수 없었는지
    간밤에 살금살금 눈이 내렸다
    철저하게 나를 따돌리고
    밤새도록 몰래 사랑을 하고서는
    하얀 거짓말을 하는 애인처럼
    얄밉도록 반가운 *도둑눈이 내렸다
    080123 
    * 도둑눈 : 밤사이에 사람들이 모르게 내린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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