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문화 지킴이 소식지인 월간 '사람과 문화' 1월호에 실린 시평입니다.
<휴식 같은 시 한 수>
김필녀 - 물의 숙명
김윤한 / 시인
우리는 물방울로 만나
조그만 냇물로
하나이다가
벼랑과 돌 틈에서
부대끼며 서로 다투다가
마침내 강에 이르러
다정하게 한 몸으로 흐르다가
너는 더 큰 바다에 다다르고
나는 너의 바다에서
파도 끝 하얀 물거품으로 일어
끝내는 잊혀져야 하는
숙명의 물방울인 것을
- 김필녀 ‘물의 숙명’ 전문
물에 대한 시를 이야기하면 먼저 강은교의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기억으로는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리’로 시작되는 시이다.
강은교의 시에서는 물은 세상을 부드럽게 하고 생기 있게 하는 긍정적인 촉매제로, 그리고 시에서 상대적인 개념을 가지는 ‘불’은 이와 반대의 개념으로 정리되고 있다.
대개 물 하면 강은교의 시처럼 물의 일반적 성질인 응결과 화합을 이야기하거나 용비어천가에서처럼 ‘냇물이 바다가 되는’ 그런 순차적인 구조를 가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김필녀의 시 ‘물의 숙명’을 읽는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시를 주목하게 된 것은 마지막의 두 행이다. 이 시는 1~10행까지는 일반적으로 물에 대해 노래한 수순을 그대로 밟아나가고 있지만 마지막 3행에서는 일반적인 시들이 보여주는 물의 순차적인 성질에서 벗어나 자신이 거대한 바다에 견주어지는 아주 작은 물방울이라는 ‘자각’에 있다. 시를 천천히 읽어 내려가 보자.
우리는 물방울로 만나 / 조그만 냇물로 / 하나이다가
- 1~3행
이 부분은 물방울이 냇물을 만나 서로 섞이고 화합하는 일차적인 성질을 나타내고 있다. 기존의 물에 대한 노래의 근본적인 시각과 변별성이 없는,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는 평범한 비유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시를 자세히 따라가 보면 사람이 살아가는 역정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아마 이 부분은 인생으로 따지자면 유년기의 성질을 나타내고 있다 하겠다. 조그만 개울이 그렇고 조그만 물방울들이 하나로 모이는 과정이 그렇다.
벼랑과 돌 틈에서 / 부대끼며 서로 다투다가
- 4~5행
앞서 살펴본 부분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자면 이 부분은 소년기에 해당한다. ‘벼랑과 돌 틈에서 / 부대끼며 서로 다투는’모습에서 이 사실을 유추해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앞에서 본 물의 응집성을 넘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부딪치며 흐르는 물의 동적인 측면을 나타내고 있다.
마침내 강에 이르러 / 다정하게 한 몸으로 흐르다가
- 6~7행
이 부분은 앞서 물이 모여서, ‘부대끼며’ 낮은 곳으로 흘러, ‘마침내 강’으로 점진적으로 확산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앞선 부분에서 부대낌을 보여주었다면 이 부분은 확산과 ‘다정하게 한 몸으로 흐르’는 합일의 과정이다. 인생의 역정으로 보자면 청년기에 해당한다.
여기까지 살펴 본 바 형식상의 한 특성을 살펴볼 수 있다. 우리가 시에서 자주 보아오는 각운의 형식이다. 각운은 두운과 달이 문장의 끝부분의 반복을 이야기하는 것으로서 여기서는 ‘~다가’가 해당된다.
‘~다가’의 반복은 3연에서는 ‘하나이다가’로 5연에서는 ‘다투다가’, 7연에서는 ‘흐르다가’로 각각 나타나는데 이 각운으로 말미암아 1~3행과 4~5행, 6~7행이 각각 독립된 의미소로 나머지 부분에 작용하게 됨을 암시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다.
너는 더 큰 바다에 다다르고 / 나는 너의 바다에서
- 8~10행
이 부분은 앞서의 물이 ‘강’에서 다시 ‘더 큰 바다’로 확산되어 나간다. 그리고 그 확산은 여기에서 정점을 맞는다. 정점이라 함은 더 이상 상승이나 확산이 이루어지지 않는 마지막 부분에 해당한다. 이 부분을 보면 다음 부분에서 무언가 결론적인 이야기를 할 것임을 암시해주는 듯하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앞서의 연장선상에서 보자면 이 부분은 인생으로 보자면 노년기에 해당한다. 조그맣게 합치는 과정(1~2행)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며 부대끼는 과정(4~5행), ‘강’으로 확산되는 과정((6~7행)을 넘어 마침내 인생의 마지막 단계인 ‘바다’에 이르게 된다.
여기까지 자세히 살펴보면 인생의 역정처럼 시가 표현하는 세계도 유년기,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와 대비되어 물방을→흐르는 물→강물→바닷물로 점진적으로 확산되어 나가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장치는 별 것 아닌 듯 무심히 지나칠 수 있지만 이 시 전체를 자세히 뜯어볼 때 결코 소홀히 넘겨버릴 부분이 아니다. 예를 들어 풍선으로 치자면 처음에는 조그맣게 부풀어 올랐다가 점진적으로 더 커져서 마침내 이 부분에서는 풍선이 급속히 팽창하여 곧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을 내포하고 있다.
다시 비유하자면 ‘강냉이 튀밥’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듣기로 강냉이 튀밥은 기계 안에서 서서히 온도가 높아지면 강냉이들이 한껏 터질 듯 열기에 달아 있다가 기계 뚜껑을 여는 순간 굉장한 폭발음과 함께 희고 탐스러운 튀밥으로 마침내 탄생하게 된다.
여기까지 시를 긴장감 있게 읽은 분들이라면 마침내 다음 단계에서 강냉이가 공기와 접촉하면서 튀밥으로 터져 나오듯 결론적인 무언가가 나올 것이라 미리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 시의 기계적 장치이다.
파도 끝 하얀 물거품으로 일어 / 끝내는 잊혀져야 하는 / 숙명의 물방울인 것을
- 10~마지막 행
앞서 기대하시라고 예고한 바와 같이 이 시의 정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시 세계의 넓이가 앞부분부터 점진적으로 확산되어 물→바다로 이어지는 시라면 그것은 이 지면에서 논할 가치도 없지만 이 부분 때문에 시의 가치가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다.
강냉이 튀밥 기계의 뚜껑이 열림으로써 비로소 튀밥이 탄생하듯 물은 마침내 ‘파도 끝’에서 ‘하얀 물거품으로’ 부서지면서 결국은 자성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는 앞서의 시 세계의 확산 구조를 뒤엎고 자신이 작은 물방울에서 시작해 거대한 강물처럼 바다처럼 흔들리며 휩쓸려 살아왔지만 포말에 부서지면서 결국은 작은 ‘물방울’ 하나 그 자체라는 ‘숙명’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물방울’의 존재마저도 ‘끝내는 잊혀져야 하는’…….
이 시는 물이라는 개체를 빌어 우리가 살아가고 또 마침내 세상에서 잊혀져야 하는 숙명을 정교한 시적 장치를 활용해 보여주고 있다. 흔히 ‘시는 인생’이라고 하는 것처럼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본 시인의 체험이 바로 이와 같은 자기 성찰의 시를 있게 한 것이 아닌가 한다.
김필녀 시인은 봉화에서 났다. 현재 안동에 거주하고 있으며 2005년 1월 월간 문학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주부문학회, 샘문학동인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