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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이 운다
김필녀
절정의 짜릿한 순간이 지나고
안타까운 여운으로 천둥이 뒤척이며 운다
사랑의 기쁨은 번개 같이 짧고
이별의 슬픔은 천둥의 속울음처럼 길고 아픈가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린 후에는
슬픔을 참지 못하고 비가 내린다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이별의 아픔을 알지 못하기에
빗방울처럼 아픈 사랑을 하는 걸 거다
070628 / 천둥 번개가 치던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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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 풍경
며칠 동안 내린 장맛비로 강물이 많이 불어서 물의 흐름도 여유롭고, 강변길도 어느 때보다 깨끗해서 상쾌한 기분으로 강변을 걷기 시작했다. 휴일 한낮의 강변은 참 한가롭다. 나와 마찬가지로 한 손에 우산을 든 사람들이 드문드문 산책을 하고 있고, 간간히 흩뿌리는 장맛비가 얼굴에 와 닿으니 시원해서 발걸음이 더 상쾌하다. 밤에 걷는 강변길도 좋지만 사람들이 한가하게 거닐고 있는 한낮의 강변길을 걷는 맛도 참 쏠쏠한 것 같다.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것보다는 한적하게 거닐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지난 봄 개나리가 노란 얼굴을 내밀 때 산책을 나왔으니 참 오랜만에 강변을 나왔다. 강둑에는 망초꽃, 금계국 등 이름 모를 여름 꽃이 군데군데 피어있다. 언제부터 나를 따라왔는지 참새 떼도 짹짹거리며 따라다닌다. 콧노래를 부르면서 7월 녹음으로 뒤덮여 지붕 일부분만 보이는 강 건너 영호루를 쳐다보고 있는데 때마침 기차가 강물 위로 난 철길을 덜커덩 거리며 지나간다. 기차의 목적지가 부산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갑자기 기차를 타고 바닷가로 여행을 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영호대교 밑을 지나는데 어르신 몇 분이서 여유롭게 게이트볼을 즐기고 있다. 다가가서 구경을 하면서 나의 노년도 잠시 생각해 보았다. 강변 둑 여기저기에는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들도 보였다.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가족나들이를 나온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젊은 아버지가 낚시를 하고 그 옆에 돗자리를 깔고 가족들이 둘러앉아서 맛있는 것을 먹으며 구경을 하고 있는 풍경이 참 아름다워서 한참을 쳐다보기도 하며 걸었다.
나의 강변길 반환점은 임하댐이 위치한 반변 천에서 흘러내리는 물과 안동댐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만나는 곳이다. 두 물길이 만나는 곳이라 그런지 그곳에 정이 간다. 그리고 반환점을 돌면 오른쪽에 자연학습원이 있어 쉬어 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연학습원에는 우리나라 토종 꽃과 나무들을 심어놓았기 때문에 철마다 꽃을 감상할 수 있다. 오늘은 주황색 꽃에 까만 점이 예쁘게 박혀 있는 참나리꽃과 길다란 꽃대끝에 핀 주황색 왕원추리꽃이 반겨주었고, 그리 예쁘지는 않지만 개쉬땅나무와 사철나무의 연노랑색 작은 꽃도 만날 수 있었다. 우리나라 토종 꽃의 종류와 나무들을 한 눈에 둘러볼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한번은 들려볼만한 곳이라고 추천을 하고 싶다.
자연학습장에서 강을 바라다볼 수 있는 의자에 물기를 닦아내고 잠시 앉아서 강물을 바라다보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강물이 뒤척이며 참 오랜만이라고 인사를 한다.
내가 강을 좋아하며 자주 찾게 된 것은 안동에 이사를 오고부터이니 한 20년이 된 것 같다. 타향이다 보니 단짝 친구도 없었고, 조용하게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다보고 있으면 마음이 참 평화로워지기 때문이었다. 기쁠 때보다는 슬플 때 강가를 자주 찾았었고, 좋은 일보다는 삶의 아픈 생채기로 가슴이 먹먹하고 외로울 때 강을 찾았던 기억이 더 많다. 그럴 때마다 강물은 언제나 변함없이 흐르면서 반갑게 맞아주었으며 집으로 돌아올 때는 많은 위안을 받으며 돌아오곤 했다.
20여년 강가를 거닐면서 터득한 것도 참 많다.
강물도 흐르다가 보면 돌 뿌리에 채여서 생채기가 날 때도 있다고도 했다. 그 아픈 생채기는 저절로 아물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생채기가 채 아물기도 전에 더 아픈 생채기가 생겨서 잊고 살게 되더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사람도 강물처럼 흐르는 세월에 그냥 출렁이며 살아가는 수밖에 다른 뾰죽한 방법이 없다고도 했다. 그렇게 살다보면 언젠가는 너도 나도 넓은 바닷가에서 함께 만나게 된다는 것이었다.
살아가는 일이 외롭고 고달프기도 하지만 살다가 보면 좋은 날도 더러는 있다고도 했다. 강물도 흘러가다 보면 한낮의 따사로운 햇볕을 안고 행복에 겨워 은빛으로 자지러질 때도 있고, 강변에 핀 이름 모를 들꽃과 눈이 맞아서 아름다운 사랑의 밀어를 나누며 행복에 겨워 밤을 새는 날도 있다며 위로를 해 주기도 했다.
젊은 날의 혈기로 나를 잘 다스리지 못하고, 인내심이 부족하여 받은 삶의 생채기 때문에 괴로웠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잘 견디며 버티어왔다. 이제 내 남은 삶을 더욱더 아름답게 꽃피우며 펼쳐나가고 싶다. 이제는 어떤 일이 닥친다 해도 너무 조급하게 살지 않기로 했다. 다만 최선을 다하면서 흐르는 세월 속에 강물처럼 출렁이면서 그냥 살고 싶다
'피하지 못하면 즐기라'는 말도 있듯이, 강물처럼 여유로운 마음으로 살아가야지 다짐하며 집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그러나 돌아오는 발걸음은 늘 바쁘다. 강물처럼 여유롭게 살겠다고 다짐한 것을 벌써 잊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오늘이 7월 1일이다. 한 해의 반년이 지나가고 어느덧 7월을 맞이했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아직 반년이나 남았으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지금부터 차근차근하게 정리하고 처리해 나가자고......,'
070701 / 김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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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재(외삼재)의 악동들
작곡재는 우리 마을에서 봉성장이나 학교에 갈려면 꼭 넘어야 하는 재의 이름이다. 봉성장터까지의 거리가 한 오리쯤 된다고 하는데 작곡재는 그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다.
이 작곡재를 어릴 때 엄마 등에 업혀서 넘기도 했겠지만 그 기억은 없다. 그렇지만 여덟 살이 되면서 엄마 손을 잡고 왼쪽 가슴에 하얀 손수건을 달고서 봉성국민학교에 입학을 하면서부터는 공일이나 방학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이 재를 넘나들기 시작했다.
학교를 갈 때는 양지마을 샘가에 모여서 언니들이나 오빠들과 함께 모여서 갔지만, 집으로 돌아올 때는 마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동네에 사는 또레들끼리 모여서 오곤 했다.
그 시절에는 다 그랬겠지만 가방도 없이 책을 싸맨 보자기를 여학생들은 허리에 차고 다녔고, 남학생들은 한쪽 어깨와 겨드랑이 밑으로 엇비슷하게 메고 다녔다. 학교를 마치고 봉성지서를 지나면 쭉쭉 뻗은 미루나무가 양쪽으로 서 있는 신작로를 한참 가다가 왼쪽으로 난 산길로 해서 작곡재를 넘어 집으로 향하곤 했다.
학교를 오가는 길은 우리들에게 계절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맞이해 주었기 때문에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다녀서 개근상을 타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봄이면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 옆의 산길은 진달래와 오디, 산딸기 등 우리들에게 맛있는 먹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여름이면 신작로 미루나무 그늘에 앉아서 한낮의 뜨거운 햇빛을 피하기도 했으며, 땀을 뻘뻘 흘리며 작곡재 고갯마루에 올라와서는 허리에 차고 있던 책보자기를 풀어 놓고 작은 돌멩이들을 주워 모아서는 시원한 나무그늘에 앉아서 공기놀이를 하면서 쉬어 갈 때도 많았다.
들판이 누렇게 익어가는 가을에는 논둑에서 메뚜기를 잡으면서 시간가는 줄 몰랐고, 남의 무우밭에 몰래 들어가서 굵고 잘생긴 무우를 쑥 뽑아서는 손으로 껍질을 깎아 먹으면서 깔깔거리기도 했다.
그런데 추운 겨울이 제일 괴로운 학교 길이었다. 학교 갈 때는 작곡재를 넘어가면서 봉성에서 불어오는 맞바람 때문에 몹시 추웠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아침과는 반대방향으로 불어오는 맞바람 때문에 작곡재를 넘어 집으로 오는 길은 더욱더 옷깃을 꼭꼭 여미게 되었다. 옷을 몇겹이나 껴 입었지만 그 당시의 포플린과 얇은 무명옷으로는 매서운 바람을 이겨내기란 몹시 힘들었다. 그래서 겨울이면 누가 먼저 만들었는지 양지바른 산 밑으로 토끼 길처럼 작은 길이 새로 나 있기도 했다. 바람을 등으로 막기 위해서 뒤로 걷기도 하고, 눈이 얼어붙은 응달진 곳에서는 미끄러져서 엉덩방아를 찧기도 하면서 다녔던 학교 길이었다.
이렇게 계절마다 추억거리를 만들면서 다니던 학교 길이었지만 작곡재를 넘어가는 길은 늘 조마조마한 마음을 가지고 올라가곤 했다. 왜냐하면 여자아이들을 괴롭히는 악동 머스마들이 작곡재 위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언제 먼저 와서 기다렸는지 악동들은 작곡재 이쪽과 저쪽 끝까지 어느새 금을 그어 놓고서는 나무 뒤어 숨어서 기다리고 있다가 넘어가지 못하게 앞을 가로막곤 했다.
그 금은 악동들의 허락 없이는 절대로 넘어가지 못하게 하면서 큰 막대기를 들고 엄포를 놓고서는 저희들끼리 산에 올라가서 실컷 놀다 오기도 했다. 순진한 여자아이들은 악동들이 금을 넘어가도 좋다는 허락이 있을 때까지 누구도 감히 그 금을 넘어가지 못하고 마냥 서 있어야만 했다. 그러다가 마음이 내키면 누구누구 넘어가고, 그 다음에는 누구하면서 애를 참 많이 먹이곤 했다. 그 악동들은 학교에서도 노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이면 여자아이들끼리 모여서 하는 고무줄을 끊어가며 애를 참 많이 먹이기도 했다.
지금은 그 작곡재도 많이 낮아지고 넓어졌으며 아스팔트가 깔려 있어서 고향 가는 길이 한결 쉬워졌다. 그리고 그 못된 짓을 즐기던 악동들도 모두 멋있는 중년의 신사가 되어 다들 잘 살고 있다. 동창회 때 가끔씩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서 웃기도 하지만, 때 묻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들의 우정이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리운 친구들 이름을 하나하나 다시 불러본다.
악당 우두머리 성대야, 그리고 우철아, 정흠아!지금은 우리 여자아이들한테 꼼짝도 못하지 그치!
어느덧 우리도 희끗한 머리가 더 어울리는 지천명을 넘기고 말았구나.
우리 건강하게 오래오래 멋있고 행복하게 잘 살자꾸나…….
070629 / 김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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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메산에서 같이 놀던 친구들아
늪실 양지마을에서 우리 집은 제일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네 살 때 태극기를 들고 새집으로 이사를 왔다고 하는데 기억이 가물가물 거린다. 집이 제일 높았기 때문에 마을에 낯선 손님이 오면 누구네 집 손님인지 마당에서 훤하게 다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우리 동네 앞에는 이름도 정다운 동메산이 있었다. 동네를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먼저 올라간 친구가 ‘미자야, 정숙아 노올자’하고 부르면 친구들이 부리나케 동메산으로 올라와 같이 놀곤 했다.
산이 나지막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동네친구들과 함께 자주 올라가서 소꿉놀이도 하고, 술래잡기도 하며 놀았던 산이다.
봄이면 혓바닥이 새파래지도록 참꽃을 따서 먹었고, 집집마다 누에를 쳤기 때문에 뽕나무에 오디가 열리면 입언저리가 까맣도록 오디를 따 먹으며 해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여름이면 매미소리를 들으며 시원한 그늘에 앉아서 공기놀이도 하고,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엄지와 검지를 튕겨서 아카시아 잎을 누가 더 빨리 따서 없애는 내기도 했다. 가을이면 아직 익지 않은 떫은 땡감과 사과를 몰래 따와서 먹기도 하고, 겨울이면 언덕배기에서 비료포대를 깔고 썰매를 타며 해 지는 줄 모르고 놀았던 동메산이었다.
해가 뉘엇뉘엇 해질 무렵이면 초가지붕 뒤에 솟은 굴뚝에서는 뽀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고, 그때부터 하나 둘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는 엄마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특히 우리 집은 동메산과 높이가 거의 비슷한 제일 높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더 잘 들렸다. '필녀야, 이제 그만 놀고 집에 들어와서 밥먹고 공부해야지'하는 세상에가 가장 다정한 엄마의 목소리와 함께 친구들과 손을 잡고 집으로 내려가곤 하던 행복했던 시절이다.
그런데 언제쯤인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친정 부모님 산소를 찾아갔는데, 그 동메산이 헐어져서 밭이 되어 있었다. 옛날 추억을 되새겨 보면서 흔적 없이 사라진 동메산이 몹시 그리웠다. 동메산에 올라가서 그 때 그 친구들 이름을 다시 한 번 불러보고도 싶었다.
언제 어떻게 해서 없어졌는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친정동네에 가면 그 동메산이 있던 자리를 쳐다본다. 그리고 내 어릴 적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산이 없어진 게 몹시 아쉽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오늘은 동메산에서 같이 놀던 친구들이 몹시 그리운 날이다.
070626 / 김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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